조작된 3.1운동의 진실을 알려드립니다.
이제 곧 삼일절입니다. 정부와 관련 단체는 민족 최대의 기념일을 준비하느라 매우 분주하리라 예상됩니다. 매년 맞이하는 삼일절이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무관심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과거사 혹은 역사에 무관심한 현 세태를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근본 원인은 찝찝한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해봅니다.
그렇습니다. 국민들은 알고 있습니다. 마땅히 존경해야할 33인 대표들, 그러나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친일로 변절하였고, 기미년 3월 1일 그날, 대중들의 함성이 터진 탑골 공원에는 정작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며, 태화관이란 요정에서 그들만의, 그것도 4인은 불참한 체 선언서를 낭독하고 난 뒤 일경에 자수했던 소위 민족대표, 그들의 행적을 이제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유관순이란 가공된 혹은 포장된 인물이 기미년의 대표적 아이콘이 되어 버린 게 오늘의 현실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대중들은 왜곡되고 은폐된 정보를 진실로 믿고 살아 왔습니다. 정보를 몇 가지 드리겠습니다.
첫째, 임시정부가 김규식을 파리강화회의에 파견했다는 교과서의 내용은 사실과 다릅니다.
상해임시정부 창립일은 1919년 4월 13일인데, 1919년 1월 상해를 떠난 김규식이 파리에 도착한 것은 3월 달입니다. 설립되지도 않은 임시정부가 어떻게 김규식 선생을 대표로 파견할 수 있었을까요?
둘째, 1920년 10월에 창간된 진단이란 한중합작 신문에 의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서울의 독립선언은 5차례 선언의 하나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즉 1917년 최초의 독립선언이 상해에서 있었고, 그 후 1919년에 유학생들이 동경선언을, 국외한인대표단들이 길림선언을, 국내한인독립선언이 경성에서 발표되었으며 해삼위(블라디보스토크)한인국민의회선언서가 또한 발표되었다고 보도되었습니다. 서울에서 발생한 독립선언의 영향을 받아 전국, 전 세계 한인 궐기로 확대되었다고 배워온 우리의 상식을 뒤집는 내용입니다.
셋째, 파리강화회담 대표파견과 기미년 독립선언을 기획하고 실행한 단체는 별도로 있으며, 그 단체의 명은 동제사이고 배후의 인물은 지금까지 역사가 외면했던 범재 김규흥이란 사람입니다.
상기 정보가 사실이라면, 3.1운동의 목적과 의미는 다시 검토되어야할 것입니다. 그동안 축소되었던 3.1운동의 역사적 위치가 크게 바뀌어 3.1혁명으로 명칭이 변경될 지도 모릅니다.
범재기념사업회를 방문하거나 곧 출간될 <범재 김규흥과 3.1혁명, 한국학술정보(주) 발간, 김상철/김상구 공저(2010년 2월 중순 발간 예정)> 이란 책을 보시면 보다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범재기념사업회 추진본부 (홈페이지 : http://www.bumjae.com/)
전화: 02-2602-6200 팩스: 02-2178-9690 이메일: shflui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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