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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견문록 ⑦류저우] "염원하던 광복왔는데…돌아갈 곳 없었죠"-매일경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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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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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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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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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14 22: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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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9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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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https://www.mk.co.kr/news/society/view/2019/03/143344/ (36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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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주치의·광복군 군의처장` 광파 유진동의 3남 유수동씨
중국서 사상범 내몰려 北으로 숙청의 피바람에 도로 중국行 이념갈등에 50년 부평초인생
◆ 3·1운동, 임시정부 100주년 / 독립견문록, 임정을 순례하다 ⑦류저우 ◆
![[류저우 = 김유태 기자]](https://file.mk.co.kr/meet/neds/2019/03/image_readtop_2019_143344_15522259443663760.jpg)  [류저우 = 김유태 기자]
1970년대 중국 문화대혁명 시절이었다. 모친은 자꾸 뭘 썼다. 상부가 강요한 `자술서`였다. 몰래 들춰 보니 어머니가 아버지와 함께 겪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후일담이 빼곡했다.
임정에 부역했으니 실토해 사상을 개조하란 의미의 자술서였다. `사상범(思想犯)`이라며 손가락질하는 중국 정부보다 용서할 수 없을 만큼 미웠던 건 부모가 피로 일군 대한민국이었다. 대한민국은 일가의 존재조차 몰랐다. 미쳐 버릴 듯한 삶이었다. 백범 김구의 주치의였고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군의처장을 지낸 광파(光波) 유진동(1908~미상)의 삼남 유수동 선생(64)을 중국에서 만났다.
광파의 생은 불행의 파고였다. 중국 상하이 퉁지의과대학을 졸업한 광파는 `백범일지`에서 백범에게 헌신을 약속하는 1936년 한 장면으로 역사의 페이지에 처음 등장한다. 광복 이후 백범을 따라 서울에 갔다가 어지러운 정세 탓에 중국으로 돌아갔고 난징에서 병원을 개업하나 공산당 강압에 직장도, 건강도 잃었다. 유 선생에게 과거를 물었다.
"1945년 정세가 혼란스러우니 백범 선생이 임정 식솔을 챙길 수 없었죠. 숙부에게 뻥튀기 기계를 사 준 것도 백범이었는데, 생계를 유지할 방편을 마련해 준 거였죠. 중국에선 `과거 청산`이란 이유로 아버지를 괴롭혔어요. 척추 마비가 왔고 거동이 어려워 가난했습니다. 6·25전쟁이 끝나니 이젠 공안이 `조선에 가라`고 압박했죠. 아버지는 김일성에게 한 장의 편지를 띄웁니다…."
꿀꺽 침을 삼키며 귀 기울였다. 광파와 김일성은 중국 지린시 위원(육문)중학교 동문이었다. 백범 반대파의 세상이니 남한행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광파 가족은 1957년 평양에 내린다. 유수동 선생 나이 만 2세였다. "이듬해 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셔간 뒤로 소식이 뚝 끊겼습니다. 1958년 옌안파(중국 옌안을 중심으로 항일투쟁을 하다가 광복 후 입북한 조선의용군 출신 정치집단) 숙청에 휘말린 걸로 봅니다. 요양원에서 큰형이 아버지를 찾으니 `그런 사람 모른다, 가라` 하더랍니다."
중국인인 모친은 중국행을 결심한다. 세 아들을 열차에 태웠다. "친척집에 간다고 핑계를 댔지만 수용소로 끌려갔어요. 여덟 살이었는데 아직 기억합니다. 그날은 몹시 추웠습니다. 신발이 몽땅 젖은 채…. 어머니가 여권번호를 기억해 두 달 만에 중국으로 떠났습니다."
사연이 기가 막혀 바이주(白酒)를 권했으나 거절하며 말을 이었다.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1992년 중국이 대한민국과 수교를 맺고 나서야 정확히 알았습니다. 1994년 `백범일지`가 중국 베이징에서 출판됐거든요. 주베이징 북한대사관에 편지를 썼죠. 답이 없었고, 11년이 지나서야 2005년에 한국 국회의장을 만났습니다. 서훈은 2007년에 받았죠. 그조차도 쉽지 않았습니다."
이념의 지평선에서 광파의 삶은 어떻게 정의돼야 옳을까. "냉전이라는 사유로 그 시대를 이해한다고요? 부친의 북한행은 살기 위함이었고, 모친의 중국행도 살기 위함이었습니다. 중국과 북한을 떠도는 독립운동가에게 반세기 동안 남한은 무얼 했단 말입니까."
말문이 턱, 막혔다.
침묵하던 유 선생이 껄껄 웃으며 스마트폰을 보여줬다. 중국에 거주하는 대한민국 독립운동가 후손 30여 명의 `단톡방`이었다. "귀화한 분들은 중국에 계속 머무를 수 없으니 한 번씩 한국에 들어가 2만원짜리 여관에서 며칠 자고 돌아옵니다. 비행기 삯도 부족하면 마카 오로 가죠. 후손들의 엄연한 현실입니다.
"
2017년 12월 유 선생은 중국 충칭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다. 정부의 행보가 반가우면서도 무엇보다 중요한 건 기억이라고, 유 선생은 힘주어 말했다. "아직 중국 땅에 대한민국 독립운동가 몇 명이 묻혀 있겠습니까. 한국에 돌아가면 꼭 기사로 써 주세요. 그들을, 우리를 잊지 말라고…." 육화(肉化)된 디아스포라가 눈물을 닦고 있었다. 바이주를 가득 채웠다.
[류저우 = 김유태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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