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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독립견문록 ②자싱·하이옌] "백범 피신하며 놓고간 상자…폭탄이었다더군요"-매일경제
글쓴이 관리자
날 짜
19-02-14 09:04
조회(4793)
#1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9&no=89366 (1985)
◆ 3·1운동, 임시정부 100주년 / 독립견문록, 임정을 순례하다 ② 자싱·하이옌 ◆



독립운동가 후손의 형형한 안광(眼光)을 상상하며 나무 문고리를 잡아당겼는데 웬 `호호백발 할머니`가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기자를 맞았다.

"손녀딸 학원 보내야 하는데, 먼 길 오셨다니 왔어요. 호호…."

눈앞의 70대 중국 노인은 백범의 피신을 도운 추푸청의 막내 손녀 추리젠 여사(71)다. 중국 근대 사상가 추푸청(1873~1948)은 신해혁명에 가담해 현대 중국을 세우는 데 힘을 보탰고, 윤봉길 의거 후 도주 중인 백범을 막후에서 지원한 혈맹(血盟) 이상의 존재였다. 추푸청은 중국인이지만 대한민국 정부가 199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한 엄연한 `대한민국 독립유공자`다. 자싱 메이완제의 김구 피난처와 맞닿은 추푸청기념관에서 추리젠 여사를 만났다. "백범이 우리 집에 왔었다는 사실을 숙모에게서 들었어요. 1945년이었던가…. 쿤밍에 살았는데 숙모가 문을 여니 검은 얼굴에 곰보 자국 심한 분이 서 계셨답니다. 키가 워낙 커서 광둥 사람인 줄 알았다던데 그가 백범이셨어요." 캐물을수록 기억은 몸을 입었다. "백범이 상자를 두고 가셨어요. 상인으로 위장했던 백범이 귀중품을 놓고 간 줄 알고 산적들이 찾아왔죠. 그런데 상자엔 폭탄이 있었답니다. 엉뚱하게 손계영 선생이 피해를 봤다고 들었어요." 독립운동가 정정화 여사의 회고록 `장강일기`에 등장하는 백범의 "특제 폭탄 수십 개" 진위가 사실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백범과의 일화를 조부께서 자주 말씀하셨는지를 묻자 "할아버지는 백범 얘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조부는 큰일을 하신 분이어서 집안 식구들에게 얘기를 잘 안 하셨습니다. 백범 선생을 도운 건 혁명에서 당연한 일이었으니, 자랑할 일이 전혀 아니었겠죠."

항일의 역사는 한중 공통분모다. 당시로선 중국과 한국이 일본에 대항해 뭉쳐야 했다. "백범 선생이 윤봉길 의사를 보내셔서 `좋은 일`을 하셨고 당시 중국 5억 인구가 환호했습니다. 할아버지가 백범을 도운 건 당(黨) 차원의 일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당시 두 나라는 운명 공동체였어요. 남파 박찬익과 조부가 교류하던 관계이기도 했고요."

5단짜리 책장에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중국어판 `백범일지`였다. 책을 꺼내며 혹시 읽었느냐고 추 여사에게 묻자 "당연히 읽었다"며 말을 이었다. "중국에서 백범 선생님의 자서전은 세 번 출판됐는데 그 책을 모두 읽었고 일부는 집에도 있어요. 조부 얘기가 절절한데 어찌 안 읽겠어요."

자싱의 백범 옆엔 토박이 뱃사공이 있었다. 이름은 주아이바오. 추푸청의 며느리 주자루이 집안에서 더부살이하던 여인이었다. `광둥 사람 장진구`로 위장한 백범 옆에는 주아이바오가 따라다녔다. 최준례 여사를 먼저 떠나보내고 상처(喪妻) 후 10년이 지난 백범은 주아이바오와 부부로 위장해 안전을 확보했다. 마지막 행적을 알지 못했던 주아이바오 행방을 추 여사가 털어놨다.

"불행한 사람이죠…. 5년간 생활했던 주아이바오와 헤어질 때 백범 선생이 돈을 쥐여 줬다더군요. 그 돈으로 주아이바오 계모가 찻집을 차렸어요. 그 후로도 주아이바오가 몇 년간 개가를 안 하니 계모가 닦달을 했나봐요. 백범과 헤어지고 1949년께 군대 취사병에게 시집갔어요. 주아이바오 후손요? 제가 듣기로는 없습니다. "

추 여사는 백범의 차남 김신 전 공군참모총장이 생전에 `주아이바오를 찾아 달라`며 추 여사에게 사진을 내밀었다는 일화도 함께 전했다. "하이옌에서 수소문을 오래 했습니다. 동사무소에 가서 비슷한 이름을 찾아냈어요. 1980년대에 사망한 걸로 나왔어요. 동사무소 직원이 그러더군요. `이 할머니를 기억한다. 생전에 내 이름이 예전에 주아이바오였다고 말했다`고요. 무덤은 못 찾았습니다. 찾기엔 너무 늦었어요."

<3회 항저우·전장 편에서 계속>

[자싱·하이옌 =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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