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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보도자료] [서평│친고종 개화파에서 비밀조직 대동단 총재, 임시정부 고문으로] 독립운동가 김가진의 삶을 재조명하다
글쓴이 관리자
날 짜
21-12-20 15:39
조회(762)
#1 http://www.naeil.com/news_view/?id_art=408729 (303)

내년(2022년)은 지하 독립운동단체 대한민족대동단(대동단) 총재이자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고문이었던 동농 김가진이 서거한 지 100주년 되는 해다. 그런데 중국 상하이 송경령능원(구 만국공묘)에 묻힌 그의 유해는 아직 고국으로 못 돌아오고 있다. 독립운동 활동에 대한 서훈을 받지 못해서다.

대동단 활동으로 서훈을 받은 분들은 80여명으로 현재까지 단일조직으로는 최다이지만 정작 총재였던 그는 번번이 서훈대상에서 탈락했다. 이유는 그에게 덧씌워진 '친일파' '복벽주의자'라는 굴레 때문이었다. 그러면 동농은 친일파 복벽주의자인가, 아니면 독립운동가인가.

동농 김가진의 일생일대 활동을 재조명한 책이 나왔다. 대동단기념사업회 회장이자 내일신문 발행인인 장명국 대표가 쓴 '대동단 총재 김가진'(석탑출판 발행)이 그것. 저자는 새롭게 발굴한 사료 등을 분석해 동농에게 꼬리표처럼 붙어다니던 '친일파' '복벽주의' 프레임이 사실이 아님을 입증했다.

의병장 이남규 부자 순국과 전혀 무관
그동안 동농의 친일행적으로 지적된 의혹들은 △식민침탈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찬양하는 시를 지었다 △충청남도 관찰사 시절 의병을 진압하고 의병장 이남규 부자의 순국에 관여했다 △일제로부터 작위와 은사금을 받았다 등이다.

'친일시'와 관련해 저자는 1889년 동농이 주일공사로 이토 히로부미와 만나 나눴던 시와 20년 후 대한협회 회장으로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에게 보낸 시를 비교해 "20년 전에는 평화를 맹세하더니 지금은 병탄을 획책하는가"라고 힐난하는 내용이라고 지적한다. 동농이 만약 '친일시'를 썼다면 바로 다음해 일본잡지 '신공론'에 일본의 병탄야욕을 꾸짖는 글을 기고할 리 없다는 것이다. 정중한 문구로 쓴 시어(詩語)는 웃음 뒤에 칼을 숨긴 외교관의 언어예법이라는 주장이다.

'의병장 이남규 부자 순국 관련설'에 대해서는 승정원일기 등 사료를 통해 전혀 사실이 아님을 밝혀낸다.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동농은 1906년 4월 15일(이하 음력) 충남관찰사로 임명됐다가 1907년 4월 6일 해임된다. 그런데 이남규 의병장 부자 순국일은 1907년 8월 19일로 무려 4개월 이상 차이가 난다.

오히려 김가진은 재임시절 민종식 의병장을 숨겨준 혐의로 체포(1906년 10월 2일)된 이남규 부자를 풀어줬다. 고종 시절 조선왕조 및 대한제국 법부(法府)로 각 지방재판소에서 보내온 공문서를 제책한 자료인 '사법품보(을)'에 따르면 충남재판관이었던 동농이 1906년 12월 3일 '이남규를 집으로 돌려보냈다'라고 보고한 내용이 나온다.

'남작 작위와 은사금 문제'와 관련해 저자는 작위는 일제가 일방적으로 준 것이고, 은사금은 받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특히 은사금과 관련해 저자는 이것이 오히려 동농이 친일인사가 아님을 확인해주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동농의 자택이었던 종로 청운동 일대 1만평 부지의 백운장은 헐값에 동양척식주식회사로 넘어갔다. 집사였던 방치선(方致善)이 동농의 도장을 도용해 전당을 잡힌 것. 결국 그후 동농은 체부동에서 셋방살이를 하며 빈한한 생활을 해왔다. 그가 친일인사였다면, 그리고 은사금을 실제 받았더라면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밖에도 저자는 일본 자치군 참모부가 일본 육군대신에게 보낸 기밀문서에 동농을 요주의인물로 보고한 기밀문서 등 새로 발굴된 사료도 공개한다. 저자는 대동단이 지하비밀조직이었다는 점을 주목하며 "대동단 활동에 대한 연구가 일제의 수사기록이나 재판기록에 근거하는 게 많은 데 실제와 다를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지하단체의 의미를 낮게 보고 폄하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사회주의' 강령과 복벽주의 공존 불가능
한편 동농이 '복벽주의자'라는 논리는 △그가 고종의 가장 가까운 측신이라는 점, △3.1운동 후 의친왕 이 강의 망명을 추진한 점 등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동농은 '친(親)고종 개화파'일 뿐 복벽주의와 거리가 멀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는 대동단 강령이다. 1919년 9월 나온 2차 강령의 키워드는 '독립' '평화' '사회주의'다. 현실적으로 사회주의와 복벽주의는 같이 성립할 수 없는 개념이다.

그리고 의친왕 망명 시도는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연통제와 교통국과의 연계를 통해 이뤄진 것으로 '고종이 합법적으로 나라를 이양했다'는 일본의 침략논리를 깨려는 의도일 뿐 복벽주의와 거리가 멀다.

동농은 1919년 고종 승하와 3.1운동 후 지하비밀조직인 대동단을 결성하고, 그해 10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있는 상하이로 망명한다. 그리고 그는 임시정부의 유일한 고문으로 추대된다. 그후 동농은 대동단 조직을 통해 국내에서 2차 만세운동을 추진하고, 며느리 정정화를 국내에 들여보내 독립자금을 모금하고, 김좌진의 북로군정서 고문으로 활동하는 등 왕성한 항일 독립운동을 펼치다 1922년 7월 77세의 일기로 세상을 뜬다.

동농 서거 후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각의결정을 통해 그를 정부장(政府葬)으로 모신다. 요즘 식으로 하면 국장(國葬)으로 예우한 셈이다. 당시 호상으로는 상하이 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 이동휘의 부친인 이 발(李發), 임시정부 2대 대통령을 지낸 박은식(朴殷植), 주석 이동녕(李東寧), 재무총장 이시영(李始榮), 의정원 의장이자 국무령을 지낸 홍 진(洪震), 의정원 의장을 지낸 김인전(金仁全), 국무위원 김 철(金澈) 등 7명의 대한민국임시정부 핵심요인들이 맡았다. 과연 동농이 친일파였다면 임시정부가 이같은 예우를 할 수 있었을까.

저자는 이런 삶을 살아온 그에게 '친일' '복벽주의' 낙인을 찍어 서훈을 보류해온 것은 아이러니의 극치라고 비판한다.

지금 동농의 유해는 상하이 송경령능원에, 아들 김의한은 평양 재북인사묘역에, 며느리 정정화는 대전 현충원에 묻혀있다. 대한민국 100년 현대사의 비극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이들 가족의 이산은 언제 끝날까. 서거 100주년인 내년엔 그의 유해가 돌아올 수 있을까.

남봉우 기자 baw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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