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일차
악비묘
악비묘 : 악비(岳飛)를 모신 사당이다. 악비(1103~1142)는 북송이 멸망할 무렵 금나라에 항거하기 위해 조직된 의용군에 가담하여 큰 활약을 한 공로로 장군이 되었다가 그 후 남송 때에 '악가군(岳家軍)'이라는 군대를 이끌고 많은 무공을 세웠던 명장이다. 당시 금나라 군사들은 악비가 이끄는 군대의 깃발만 보고 후퇴할 정도로 악비를 매우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 후 악비는 금나라와의 화평론을 주장하는 진회(秦檜), 장준(張俊)에 의해 무고한 누명을 쓰고 살해되었다. 이 악비묘는 남송 가정(嘉靖) 14년(공원 1221년)에 처음 건축되었다. 악묘의 대문을 지나면 악비의 동상이 있는 충렬사가 있고 '심소천일(心昭天日)'이라는 네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동상 위 편에는 악비가 썼다고 하는 '환아하산(還我河山)'이라는 금색 글귀가 있다. 이 글에는 잃어버린 우리 강산을 되찾아오겠다는 악비의 굳은 의지가 담겨 있다. 무덤 앞에는 악비를 모함에 빠뜨린 진회와 심복들의 철상이 꿇어 엎드리고 있는데, 전에는 이들 상에 침을 뱉고 난후 악비의 묘에 참배했다고 한다.
1934년 6월 29일 한국독립당 이사이자 임시국무위원 비서장인 김철이 항주에서 병사하자 임시정부는 서호가 악비묘 뒤의 공동묘지에 시신을 안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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