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일차
상아의원
상아의원(湘雅醫院) : 일제는 1937년 7월 7일 노구교(蘆溝橋)사건을 기화로 중일전쟁을 도발하였다. 이 같은 정세 변화에 따라 독립운동단체들은 크게 두 갈래로 체제를 정비하여 본격적인 대일항전을 준비하여 갔다. 하나는 1937년 8월 한국국민당, 한국독립당, 조선혁명당 등이 중심이 된 우익 민족운동계열의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韓國光復運動團體聯合會; 光復陣線) 결성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같은 해 11월 민족혁명당, 조선민족해방동맹, 조선혁명자연맹 등이 중심이 된 좌익 민족운동계열의 조선민족전선연맹(朝鮮民族戰線聯盟; 民族戰線) 결성이었다.
임정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국민당을 비롯한 한국독립당, 조선혁명당 등 우익 3당의 통합문제가 제기되어 통합논의를 위해 우익 3당의 대표들이 1938년 5월 6일 남목청(楠木廳)에 모여 회의를 진행하던 중 남목청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운환(李雲煥)이 3당 대표들에게 권총을 발사한 것이다. 백범이 맨 먼저 가슴에 총을 맞았고, 춘교 유동열, 백산 이청천, 묵관 현익철 등이 잇따라 총을 맞아 중경상을 입었다. 그로 인해 현익철은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절명하였고, 백범과 춘교는 상아의원에 입원하여 치료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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