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일전쟁 종전 60돌을 기념해 2005년 중국 충칭시에 세워진 ‘제2차 세계대전 항일기념비’. 전쟁 기간 임시정부 가족들과 함께 충칭에 머물렀던 필자는 1944년 가을 중국군의 학생의용군으로 자원입대 신청을 했으나 나이 미달로 거부당했다.

학생의용군 지원했지만 좌절되고 / 김자동
임정의 품 안에서 66

1944년 내가 편입학한 충칭 부근 장진현의 국립제9중학은 전체 인구 30만 정도인 현에서 유일한 중학교로 6개 분교가 있었다. 극재와 진세 두 사람은 같은 분교에 다녔지만 나는 따로 다른 분교로 배속됐다. 입학하던 날 아버지는 나를 그곳까지 데리고 가 극재에게 잘 돌봐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읍내에서 한약방을 경영하는 중국인 한의사 친구에게 데리고 가 인사를 시키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도움을 청하라고 그 자리에서 말했다. 이렇게 장진에서의 생활이 시작됐다. 새로 중국 친구들도 생겼으나 지난 몇해 동안 함께 지냈던 동포 친구들처럼 친해지지는 않아 일요일에는 극재와 진세를 찾아가 함께 지내는 것이 가장 즐거웠다.
입학한 지 3주쯤 지났을 때 학생지원군 모집이라는 거국적인 큰 사건이 등장했다. 7년 동안 항일전을 펼치면서도 중국의 인적자원은 여유가 있었다. 징병제가 있었으나 학생은 무조건 제외됐다. 학교에 보낼 경제적 여유만 있으면 누구나 징집을 면할 수 있었다. 그래서 18, 19살이 돼서도 소학교(초등학교) 1학년으로 입학만 하면 군대를 안 갈 수 있어 20살이 넘은 소학생을 실제로 볼 수 있었다.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나 있었을 법한 실화를 하나 소개하겠다.

그때 중국에서는 징집 대상자 혹은 대리인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추첨을 해서 그중 몇 사람에게 추후 영장을 발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돈 있는 사람이 뽑히게 되면 가난한 사람에게 금전을 주고 대신 나가게 하는 사례도 흔히 있었다. 그러다 보니 대리 입대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까지 생겼다. 돈을 받고 입대했다가 기회를 봐서 탈영을 하고, 또 돈을 받고 다른 사람 대리로 입대해 다시 탈영하는, 그런 일을 되풀이하는 전문가까지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중국 군대의 수준이야 당연히 형편없었으며, 사병들은 거의 전원 문맹이었다. 이 문제를 중국의 지도자들도 상당 부분 인식하고 있었다. 44년에 이르러 미국은 중국에 신무기를 대량으로 공급할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중국군 대부분은 이런 신무기를 활용할 수준이 못 됐다. 그리하여 중국 정부가 학생들의 애국열을 고취하면 지원자는 얼마든지 있으리라는 판단 아래 학생의용군 모집에 나서게 된 것이다.
 
나는 소학교 때부터 신문을 열심히 읽어왔으며, 어려서부터 시사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고 지냈다. 그 덕분에 44년 가을께 일본이 2년 이상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을 내 나름대로 내리고 있었다. 일본이 패망하면 조국이 해방되고 환국할 날도 멀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늘 일본이 망하기 전에 나도 나라를 위해 총을 들어봐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으며, 부모님에게 나도 광복군에 들어가겠다는 뜻을 말한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은 적어도 고중이나 졸업한 뒤에 생각해 보자고 말씀하시곤 했다.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졸업하기 이전에 전쟁이 끝날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중국 정부에서 학생의용군을 모집한다기에 응모하기로 결심하고 10월 중순 지원서를 냈다. 내가 충동해 우리 반 학생 5, 6명이 함께 원서를 냈다. 그런데 저녁때쯤 극재와 진세가 찾아왔다.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었더니, 전봇대에 ‘한국 학생도 지원했다’고 써붙인 것을 보고 알게 됐다는 것이다. 나중에 들으니 나의 지원 사실이 그 지역 신문에까지 보도됐다는 것이다. 당시 의용군에 지원해 충칭시내 응모처를 통해 입대하면 한두달 안에 인도 아삼지역의 특별훈련소로 보내져 미군으로부터 훈련을 받게 돼 있었다. 그래서 함께 지원한 친구들과 충칭으로 가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강 건너 장진읍내에서 충칭행 배편을 이용하려고 했는데, 일행 중에 표 살 돈이 없는 친구가 있어 아버지가 소개해준 한의원에 찾아가 돈을 빌려 함께 떠났다. 충칭의 응모처에서 수속을 마치고 있는데 뜻밖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곳까지 찾아오셨다. 극재가 아버지에게 전보 연락을 한 것이었다. 원서를 제출할 때 보호자의 동의서가 있어야 해 아버지의 도장을 새겨서 작성했는데, 아버지는 이미 응모처 사무실에 들러 동의한 일이 없다고 말한 뒤였다. 만 18살 이상인 나이 자격도 거짓으로 기재한 것이 밝혀져 나는 그 자리에서 퇴출당하고 말았다.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사업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