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독립정신 답사단원들이 지난 7월 9일 비옷을 입은 채 1937년 한인 청년들이 훈련받았던 중국 주장시 중앙육군군관학교 성자 분교 터로 올라가고 있다. 이곳에서 훈련받은 한인 청년들은 조선의용대와 광복군의 골간이 됐다.
‘항일의 길’ 흔적 지워졌지만 가슴이 뛰었다
광복군 창설 70돌…중국 독립운동 유적지 답사 현장
올해로 6회째인 ‘독립정신 답사단’(단장 이만열)은 광복군 창설 70돌을 맞아 ‘광복군의 발자취를 따라서’라는 주제로 7월8일부터 6박7일 동안 중국의 광복군과 조선의용대 유적지를 답사했다.
임시정부기념사업회(회장 김자동) 주최로 열린 이번 답사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무장독립군이었던 광복군의 모태가 된 조선의용대의 창립지 우한과 광복군의 제3지대 성립지 푸양, 광복군의 특별 훈련 장소였던 린추안, 광복군 제2지대의 본부와 훈련장소가 있었던 시안 등의 항일투쟁 유적지들을 둘러봤다.(아래 지도그림) 이번 답사에는 엄격한 심사를 거쳐 뽑힌 대학생 54명과 독립운동가 후손, 임정기념사업회 회원 등 모두 72명이 참가했다.
이지훈(고려대 경영학과) 답사단원은 “광복군 유적지들을 둘러보면서 매너리즘, 우울증을 극복하게 됐다”며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 같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박다혜(서강대 사학과) 단원도 “이번 답사를 통해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조선의용대·광복군 창립장소
가구점·나이트클럽 들어서
대학생 등 답사단 70여명
독립군가 부르며 6박7일
“작은 표지석이라도 세웠으면”
식민지 청년들은 왜 조선을 떠나 이역만리 중국에서 항일투쟁의 길을 걸었을까. 70~90여년이 흐른 뒤 ‘독립정신 답사단’의 청년들이 그들의 발자취를 찾아 나섰다.
뭇 대학생들이 취직에 도움이 된다는 ‘스펙 쌓기’에 골몰하고 있지만, 답사단은 오늘의 우리가 있기까지 “그들의 투쟁이 없었다면 우리 답사단도 없다”(최승연·이화여대 사학과)는 성찰을 화두 삼아 선인들의 피와 땀이 서린 중국 땅을 밟았다.
■ 식민지의 긴 터널을 지나듯 밤기차는 달리고… 7월 8일 답사 첫날. 후베이성 우한은 훗날 광복군으로 일부가 편입되는 항일군사조직 조선의용대의 창립지다. 1938년 창립을 선언했던 옛 기독청년회 건물터엔 가구점이 들어서 있다. 가뭇없이 사라진 항일유적 앞에서 답사단의 가슴도 때마침 쏟아진 비와 함께 젖었다.
9일 둘째 날 장시성 주장. 1937년 조선 청년 1백여 명이 훈련을 받았던 중앙육군군관학교 성자 분교 터로 향했다. “부친은 1933년 중국으로 망명했지요.” 땀범벅이 된 채 성자 분교 터로 오르는 산길에서 이동철 임정기념사업회 감사가 말문을 열었다. 당시 이 분교에서 이 감사의 부친 이원대가 훈련을 받았다. “부친은 중국이름 마덕산으로 알려진 인물로 의열단 출신 안병철의 권유로 망명했지요. 1937년 김원봉 대장의 허락을 받아 이곳에 입교했습니다.” 여기서 훈련받은 한국인들은 이듬해 창립한 조선의용대의 기둥이 됐다.
그날 밤, 식민지 압제의 긴 터널을 지나듯 기차는 다섯 시간 동안 어둠을 뚫고 푸양으로 향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인 양인선 단원은 님 웨일스의 <아리랑>을 손에서 내려놓지 못했다. 그 책은 중국에서 활동한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일대기다. “풍찬노숙하며 싸웠던 그분들 생각에 한번에 다 읽기 아까워 천천히 읽었어요.”
■ 항일 무장투쟁사도 이제는 좌·우의 날개로 셋째 날인 10일. 안후이성 푸양의 광복군 제3지대 성립장소는 나이트클럽으로 바뀌어 있었다. 답사에 동행한 원로언론인 임재경 단원은 “이런 곳은 우리 정부가 사서라도 기념을 해야지…”라며 안타까워했다. 13일 시안의 광복군 제2지대 본부 터를 둘러볼 때는 고척고 교사 주세영 단원이 “민간차원에서 작은 표지석이라도 세웠으면 좋겠다”는 즉석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답사 다섯째 날인 12일. 국민당 정부 중앙육군군관학교 뤄양 분교 터를 찾았다. 1934년 한국 독립군 총사령관 이청천 장군을 책임자로 문을 연 뤄양 분교엔 한국인 92명이 입교했다. 이어 찾은 뤄양 팔로군판사처(사무소)는 1938년 이래 조선의용대 제2지대가 주요 활동거점으로 삼았던 곳이다.
조선의용대의 일부는 중국공산당 소속의 조선의용군으로 합류한다. 조선의용대에서 광복군과 좌파 계열인 조선의용군이 모두 탄생한 것이다. <한국독립운동의 역사> 60권을 올해 초 완간한 이만열 답사단장(독립운동사편찬위원장)은 이 전집을 소개하면서 “항일무장투쟁을 보는 시야를 더 넓혔다”고 말했다. 이 전집은 기존의 광복군과 조선의용대, 조선의용군을 다루는데 그치지 않고 김일성의 동북항일연군 등 좌파 무장투쟁까지 폭넓게 담았다는 평가다.
■ “놀면서 공부하자” 발랄한 답사 임정기념사업회 김자동 회장은 발대식에서 ”독립운동 유적지가 많이 있지만 낙양·서안 등 명승지도 많으니 ‘놀면서 공부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대학생들을 격려했다. 실제로 학생 단원들이 가는 길엔 “까르륵!”하고 숨 넘어가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임시정부의 기초가 된 단체는?” “저요. 신한청년회!”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즉석 퀴즈대회가 열렸다. 정답자에겐 상품권이 주어진다. 그러나 줄지 말지는 사회자 맘이다. ‘아니꼬우면 네가 사회자하든지’라는 식. 모두 8조 까지 있는 학생 답사단은 조별 주제발표 시간도 가졌다.
답사단원들은 이동하는 내내 독립군가를 불렀다. 독립군가 4절까지 부르기 시합도 벌어졌다. “신대한국 독립군의 백만용사야, 조국의 부르심을 네가 아느냐…독립문에 자유종이 울릴 때까지 싸우러 나가세.” 온전하게 다 부른 이소정(부산대 고고학과) 단원에게 부단장인 김광재 박사가 인민폐 100위안을 상금으로 건넸다.
빡빡한 답사일정이었지만, 항일투쟁 유적지만 찾아다닌 것은 아니다. 송나라의 도읍 카이펑에서 ‘판관 포청천’으로 유명한 개봉부를 둘러봤고, 얼마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허난성 덩펑의 소림사에도 들렀다. 특히 시안에서 진시황의 병마용을 구경한 단원들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꼽았다.
시안/글·사진 손준현 선임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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