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관 경주(慶州). 호 우당(友堂). 서울 출생. 초대 부통령 이시영(李始榮)의 중형(仲兄). 1901년 근대적 신교육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삼포(蔘圃)를 경영하다가 일본인들의 약탈로 실패, 1908년 장훈학교(長薰學校)를 설립하고, 안창호(安昌浩) ·이동녕(李東寧) 등과 함께 청년학우회(靑年學友會)를 조직, 무실역행(務實力行)을 행동강령으로 독립운동에 전력하였다.
1910년 대종교(大倧敎)에 입교, 12월 일제의 탄압을 피해 중국 길림성[吉林省] 유하현[柳河縣] 삼원포[三源堡]로 망명, 신흥강습소(新興講習所)를 설립하였다. 그 후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1919년 북경[北京]으로, 다시 상해[上海]로 가는 등 각지를 전전하며 독립운동에 힘쓰던 중 1921년 신채호(申采浩)와 함께 무정부주의운동을 벌이며 분열된 임시정부의 단합을 위해 조정역을 담당하였다. 1932년 길림성에 연락근거지를 확보하고 지하공작망을 조직할 목적으로 상해에서 대련[大連]으로 가던 도중 일본경찰에 붙들려 심한 고문 끝에 옥사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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