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92주년을 앞두고 지난 3월 29일 오후 (사)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김자동 회장(84) 사무실을 방문했다. 반갑게 맞아준 김 회장은 이미 팔순을 훌쩍 넘은 나이에도 소년같은 얼굴로 임시정부와 세상 이야기를 했다.
김 회장은 어린시절 상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인근에서 백범 김구 선생의 둘째아들 김신 씨와 함께 자랐다. 할아버지 김가진 선생과 부친 김의환 선생은 독립운동가였고 어머니 정정화 씨는 임시정부(약칭 임정)의 어려운 살림을 맡아 이동녕 초대주석이 돌아가실 때까지 모셨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있는 상해에서 자랐다고 하는데.
조부가 일본이 준 작위를 버리고 상해 임정으로 가신 때가 1919년 74세 때였다. 대동단 총재였던 조부가 점점 스러져가는 3‧1만세 운동의 불씨를 다시 피우기 위해 전국적인 봉기를 준비하면서 조직이 와해될 가능성이 높아 본부를 상해로 옮겼다. 봉기가 일제의 탄압으로 무산되었으나 조부와 부친이 상해로 가서 임정에서 일했고 3개월 후 모친도 망명했다. 조부는 임정의 독립자금 모금활동을 하시다 3년이 채 못 될 때 돌아가셨고, 1928년에 내가 태어났다. 약 1년 정도 국내에서 살았던 것을 빼고는 임정이 있는 상해에서 자랐다. 해방이 되고 1946년 19살 때 귀국했다.
조부께서 사회지도층으로 모범을 보였다.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가 갖춰야할 덕목에 대해.
첫째, 정직해야 하고 둘째, 청렴해야 한다. 요즘 대통령, 국회의원을 비롯한 고위공직자의 재산이 늘었다는 기사를 봤다. 내 의견으로는 고위 공직을 맡았으면 재산을 공탁하든지 그 지위에 있는 동안 증식된 재산을 국가에 바쳐야 한다고 본다. 고위 공직과 재산증식을 다 가지려 하면서 탈세와 결탁이 이뤄진다.
최근 친일재산환수에 반발한 친일파 후손의 손을 들어준 대법원 판례에 대한 논란이 많다.
판사 개인의 소양도 문제지만 개인 재산권 존중만 알고 역사의식이 없는 인물을 법관으로 발탁하는 국가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판‧검사 등 국가의 중요 공직 임용시험과 대학입시에 국사를 반드시 넣어야 한다. 우리나라가 어떻게 망했고, 어떻게 일제와 맞서 싸웠으며 누가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그 후손이 어떻게 사는지, 그리고 항일투쟁 유족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나는 그나마 운이 좋아 서울대학교를 갔지만 대부분 항일투쟁 유족들이 고등교육을 받지 못하고 어렵게 살았다.
현행 국사교육에 대해 한 말씀.
국사를 배우면 그 속에서 민족의식이 생겨나야 하는데 지금 국사교육은 그렇지 못하다. 게다가 선택과목이니 뭐니 하면서 그나마도 안 가르치려 한다. 역사지식 하나 더 가르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짤막짤막한 사실의 나열에 그치지 말고 배경, 리더십 등 정신을 깨우칠 수 있을 정도로 내용이 풍부해야 한다. 문광부에서 낸 책 중 우리나라의 뿌리를 미군정이라고 쓴 책이 있다. 민족정신이 없는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도 취임 후 단기를 공식연호를 쓰기 전까지 임시정부 수립에 따른 ‘대한민국 몇 년’이라고 썼다. 대한민국의 뿌리는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있었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독립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갖는 의의는 무엇인가.
우리나라를 직접적으로 해방시키는데 광복군이 참여하지 못했지만 전세가 조금만 달라졌어도 국내 침투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다. 결국 외국군대에 의해 해방을 맞았다지만 임시정부는 광복군을 길러 언제든 연합군과 함께 우리나라를 되찾을 준비를 했다.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독립보장 문제가 대두된 것은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독립전쟁을 이어오며 우리의 독립의지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국사교과서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관한 내용이 한 부문으로 반영되어야 한다.
일본강점기가 우리의 근대화를 이끌었다는 시각으로 쓴 근현대사 대안교과서도 있는데
뉴라이트에서 발행한 교과서를 보면 독립운동을 항일테러라고 했다. 굳이 테러라는 용어를 쓰는 것은 항일투쟁을 폄하하고 일본 통치를 미화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우리 역사를 바라보는 바른 역사인식보다 경제논리에 앞서 있다. 철도를 놓고 농지를 개량하고 광산을 개발한 것은 모두 일본 제국주의가 전쟁에 필요한 물자조달을 위한 것이었다. 일본이 없었으면 우리나라가 정체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판단이다.
임정의 건국강령에는 ‘삼균주의’를 표방하고 홍익인간과 이화세계를 우리 민족 최고의 공리라고 했다
헌법에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들어간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문구가 아니라 임정이 더불어 고르게 잘사는 나라를 꿈꾸었던 그 법통을 제대로 이어야 한다. 임정은 독립 후의 국가건설을 준비하면서 민주공화국을 표방하고 민족의 역량을 최대한 결집하기 위해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좌우합작을 했다. 임시정부가 구상한 사회는 국민이 주인이 된 더불어 잘사는 나라였고 이것이 홍익인간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 경제 교육의 권리를 고르게 하고 중요 기간산업의 국유화, 경자유전의 원칙에 따른 토지개혁, 무상교육, 무상치료, 남녀평등, 파업의 자유, 8시간 노동제 등을 약속했다. 이 뜻을 제헌 헌법에 담았는데 그 후 많이 후퇴한 편이다.
임정이 꿈꾸던 더불어 잘사는 사회를 만들려면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지.
현재 우리나라는 잘 사는 사람은 더 잘 살고 못 사는 사람은 소외되는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복지를 좀 더 늘리면 국가경비가 거덜 나는 것처럼 여긴다. 스웨덴이나 핀란드 등을 살펴보면 복지 때문에 경제가 발전하지 못한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정부가 부자 감세정책을 폈으나 부자들에 대한 세금감면이 고가의 수입물품 소비를 늘렸을 뿐 산업 투자로 바로 연결되지 않았다. 워렌 버핏이나 빌게이츠도 부시정부의 부자 감세정책을 반대했다. 현재 재벌들이 보유한 유휴재산에 단 몇%라도 세금을 매겨야 빨리 산업에 투자하게 된다. 경제적 약자에 대한 비과세소득 기준은 조정하고 부자에게는 적정하게 세금을 올려야 한다고 본다.
천안함, 연평도, 북핵문제 등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되었다. 치열하게 남북분단을 치러낸 김 회장께 통일이란 어떤 의미인가.
아버지가 6‧25때 납북되어 1964년에 돌아가셨고 2006년에서야 성묘할 수 있었다. 또 인민군에 두 번이나 징발 당했다가 탈출했다. 1960년대 초반만 해도 '머지않아 통일이 되겠지'했는데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살아생전에 통일을 보고 싶은 마음이야 크지만 그리 이른 시일 내에 통일이 될 것 같지 않다. 북한을 계속 몰아세우기만 하면 결국 북한은 중국의 품으로 더욱 파고들 수밖에 없다. 통일 전, 서독에서는 정권이 바뀌어도 전 정권의 통일정책을 유지했다. 정권교체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정책이 아니라 꾸준한 통일의지를 갖고 일관된 정책을 펴나가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북한도 우리의 선의와 통일의지를 믿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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