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문자, 그 이후' 전

광개토대왕비 원석탁본(原石拓本) 등 대표적인 한국 고대 문자자료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국립중앙박물관은 10월5일부터 특별전 ‘문자, 그 이후:한국고대문자전’을 열고 고대인의 삶과 생활상을 문자자료를 통해 조명한다. 이번 전시는 금석문, 탁본, 목간, 명문와전 등 전시물이 모두 500여점에 달하는 국내 문자자료전 사상 최대 규모이다. ‘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국보 196호)’, ‘무구정광대다라니경(국보 126호)’, ‘연가7년명 금동불상(국보 119호)’과 같은 국보급 문자자료는 물론, 광개토대왕비 원석탁본과 일본 정창원(正倉院) 소장 문서 등이 국내 최초로 공개된다.

‘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은 755년에 완성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경(경문을 쓰고 그림을 그려 장엄하게 꾸민 불경)이다. 책머리에는 금색으로 불경의 내용을 요약해 그린 변상도가 있고 신장상·불보살·꽃·풀 등이 그려진 표지에 해당하는 그림이 있어 신라시대의 유일한 회화자료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751년(경덕왕 10)경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현존하는 목판 인쇄물이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주목할 것은 광개토대왕비 원석탁본과 일본 정창원 소장 문서이다. 광개토대왕비 원석탁본은 석회가 발라지기 이전 광개토대왕비가 발견된 원래 상태에서 뜬 탁본으로 5세기 동아시아 국제관계를 밝히는 중요한 1차 자료인 광개토대왕비의 원모습을 전해준다. 이번에 전시되는 원석탁본은 일본 역사민속박물관에 소장된 것으로 지금까지 알려진 10여종의 원석탁본 중 가장 훌륭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신라촌락 문서인 ‘신라장적’과 신라 호적의 영향을 받아 제작된 미노국(御野國) 호적 등 일본 정창원의 유물 20여점도 볼 수 있다. 일본 동대사에 있는 정창원은 일본 나라 시대 유물과 함께 당시 일본과 교류한 한반도 관련 유물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정창원은 해마다 약 9000여점의 소장품 중 70건씩만 돌아가며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이 밖에 발해와 말갈을 기록해 발해사 연구의 단서를 제공하는 다가죠비, 왕인 박사가 천자문을 일본에 전했다는 내용을 기록한 <고사기> 등 일본 고대 자료도 비교 전시된다.

이번 특별전은 문자자료의 수용과 발전 과정을 통치, 생활, 사상의 세가지 측면에서 조명한다.

백제시대 목간에서는 당시 사람들의 내면과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옛 사람들이 “돈이 없어 벼슬길에 오르지 못한다”고 신세를 한탄하거나 죽은 가족이 극락에서 왕생하기를 바라는 마음, 가뭄에 비를 애타게 기다리며 용왕에게 기도하던 절박한 심정들도 생생하게 나타나 있다. 이자율이 무려 5할이나 되는 고리대가 존재했음도 7세기 백제목간에서 알 수 있다. 경주 능지탑 출토 소조불(흙을 구워 만든 불상)의 “膝(무릎)” “股(넓적다리)” 같은 표시나, 건축물 벽돌의 위치 표시 등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꼼꼼한 계획성을 살필 수 있다.

‘신라장적’에서는 뽕나무를 심고, 삼밭을 일구며 소와 말을 키우던 농촌 백성의 모습과 폐기된 문서를 포장지 등으로 재활용한 알뜰살뜰한 당시 살림살이를 볼 수 있다.

문자수용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낙랑지역의 봉니(封泥), 인장과 함께 경주 석가탑 출토 먹, 부여 관북리 출토 자료, 경주 안압지에서 출토된 종이자료와 여러 종류의 벼루 등 삼국 시대 사람들의 문방구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설총이 정리한 이두, 향찰, 각필 자료와 함께, 최치원의 사산비 등 신라 명필의 작품도 전시된다.

문자 자료를 통해 옛 사람들의 생활상과 내면을 헤아려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11월27일까지 개최된다. (02)2077-9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