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사학회.’ 최근 한국의 학회 가운데 가장 자주 거론되는 단체일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달 발표한 ‘2009 역사교육과정 개정 고시’의 초·중·고 역사 교육과정에서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꾸게 한 것이 계기다.

역사교과 개정의 실무기구인 역사교육과정개발정책연구회가 올 초부터 검토를 시작해 지난 7월15일 최종안을 제출하고 19일 심의회를 거칠 때까지만 해도 개정안에는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썼다. 그러나 현대사학회가 같은 달 25일 수정요구를 내자 상황은 급변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이튿날인 26일 교과부 자문기구인 역사교육과정개발추진위원회 일부와 현대사학회 측 인사 등 5명이 모인 비공식협의회를 연 뒤 28일 ‘자유민주주의’로 바꾸자는 최종검토의견을 교과부로 보냈다. 전문가들이 반년가량 검토한 뒤 낸 의견을 불과 며칠 만에 바꾼 현대사학회는 과연 어떤 곳일까.

현대사학회는 지난 5월20일 “한국현대사 연구와 관련된 제 분야 학자들 간의 다양한 학문적 교류와 협력을 도모하고 세계화에 개방적인 자세로 한국현대사 연구 활성화를 통하여 한국현대사학 정립에 기여하고자 한다”는 취지를 내걸고 창립했다. 현대사학회 측은 회원 수가 현재 200여명이라고 했지만, 전체 회원명단을 밝히지는 않았다.

이 때문에 경향신문은 이 학회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임원·위원과 고문 현황을 분석했다. 권희영 회장과 12명의 상임이사, 부회장단, 총무·편집·교육·연구·대외협력·특별위원회 등 6개 분과위원회 위원들 중 중복 인원을 제외하면 확인되는 회원은 61명이다. 고문은 27명이다.

이름은 한국현대사학회지만 한국현대사를 전공한 전문가는 드물었다. 61명 중 역사 관련 전공자는 19명 정도로 3분의 1 수준이었다. 이들 중에도 미술사와 서양사, 동양사, 고려시대사 등 한국현대사와 거리가 있는 분야를 연구한 사람이 많았다. 근대사까지 분야를 넓혀도 학회 이름에 걸맞은 전공자는 8명에 그쳤다. 대표적인 한국사 관련 학회인 ‘한국사연구회’의 경우 41명의 임원 및 평의원 전원이 한국사를 전공한 것과 대비된다.

현대사학회 권희영 회장은 전공자가 적다는 지적에 “현대사를 다각적으로 보기 위한 것이다. 꼭 한국현대사 전공자가 많아야 하느냐”고 말했다.

현대사학회는 몇 해 전 이승만·박정희 정권의 긍정적 측면만 강조한 대안교과서를 만들어 비판받았던 ‘교과서포럼’과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안병직·박효종·이인호(이상 서울대)·유영익(연세대)·차상철(충남대)·김종석(홍익대) 교수 등 교과서포럼의 주요 멤버가 이 학회의 고문·임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두 단체 모두 현 교과서의 ‘자학사관’에서 탈피해야 한다며 역사교과서를 바꾸는 데 힘을 집중하고 있는 것도 닮은꼴이다. 2006년 교과서포럼이 만든 교과서 최초 시안에서 5·16은 군사쿠데타가 아닌 ‘혁명’으로 격상된 반면 4·19는 ‘학생운동’으로 격하됐다. 교과서포럼의 공동대표였던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일본군 위안부를 ‘상업 공창’이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기도 했다.

현대사학회에는 출범 초기 진보·중도 성향 학자들도 참여했다. 이념편향성을 탈피해 스펙트럼을 넓힌다는 게 취지였다. 그러나 진보·중도 학자들은 “학회 설립 취지를 제대로 얘기하지 않았다” “허락 없이 이름을 올렸다”는 등의 이유로 탈퇴했다.

권희영 회장은 “교과서포럼과 왜 동일선상에서 보느냐. 과거에 교과서포럼 활동을 하신 분들이 있지만 지도부가 다르고, 지향하는 바도 다르다”고 말했다. 반면 조광 고려대 명예교수는 “역사학계에서는 이들을 역사학회로 바라보지 않는다”면서 “전문가들의 의견은 무시하고 이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 역사교육과정 개정이 이뤄진다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