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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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청산리전투 전승 100주년과 홍범도 장군
글쓴이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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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4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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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리전투 전승 100주년과 홍범도 장군

우 원 식(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

올해는 임시정부 수립 101주년,
봉오동, 청산리 전투로 대표되는 독립전쟁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지금의 헌법 전문에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라며 명시되어 있지만, 6.10 민주화 항쟁에 따른 헌법 개정 전까지 광복 이후 현대사에서 임시정부의 의미는 40여년 이상 평가절하되어 왔습니다.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의 주인공인 홍범도 장군 역시 이데올로기의 장막에
갇혀, 제대로 평가 받지 못했습니다.
임시정부가 항일독립운동의 중심이자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출발을 열었듯이, 홍범도 장군이 이끈 봉오동 ·청산리전투는 독립운동사에서 가장 빛나는 승리이자, 광복을 위한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봉오동 전투는 영화로도 개봉되어 홍범도 장군이 주역임은 잘 알려져 있지만,청산리 전투에서 역할은 대부분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독립전쟁 최고의 승리인 청산리 전투에서 드러난 홍범도 장군의 활약을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회보인 <독립정신>에 소개하게 되어 기쁨과
감사를 함께 전합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20년을 ‘독립전쟁 원년의 해’로 선포하고 <독립신문> 1면에 독립전쟁 의지를 밝힙니다. 3.1운동으로 자각한 청년들이 독립군에 투신했고, 만주와 간도 곳곳에 터 잡은 독립군 부대들이 바로 독립전쟁의 주역이었습니다.
1920년에만 독립군의 국내 진공 작전이 무려 1,651회나 펼쳐졌습니다.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대한독립군’ 또한 다른 독립군단들과 연합전선을
구축해 국내 진공 작전을 꾸준히 전개했습니다. 그해 6월, 홍범도 장군이 이끈 독립군 연합부대는 일본군을 상대로 독립전쟁 최초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바로 ‘독립전쟁 1차 대승리’라고 불리는 봉오동 전투였습니다. 그리고 뒤이어 10월의 청산리 전투에서 또 다시 일본군을 상대로 크게 승리하게 됩니다.

청산리전투는 김좌진, 이범석이 지휘하는 북로군정서와 홍범도가 이끄는 대한독립군 등을 주력으로 한 독립군 부대가 10월 21일부터 26일 까지 6일간 백두산 인근 청산리 일대에서 일본 정규군을 대파한 전투입니다.
자료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독립군 측은 전사자 100여명 가량을 내며 일본군600여명을 사살합니다.
백운평·천수평 전투는 김좌진 부대가, 완루구·고동하 전투는 홍범도 부대가, 어랑촌·천보산 전투는 연합군으로 싸워 승리했습니다. 때로 양 부대는 선의의 경쟁상대가 되기도 했으나, 적과의 전투에서는 서로 돕는 상호보완적 관계를 유지하였습니다.
청산리전투는 여러 독립군 부대의 연합에 의한 대규모 승전으로, 이후 무장투쟁이 더욱 활발해지고 국내·외 독립운동을 고양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독립전쟁에 대한 연구가 심화되면서 홍범도장군을 중심으로 한 독립군 연합 부대들의 역할에 대한 평가가 새로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북로군정서 군대가 독립군의 단위부대로서는 가장 큰 규모이며 기관총과 박격포까지 갖추고 있어 강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지만,
홍범도 부대는 9월 하순 가장 먼저 청산리 일대에 도착하여 훈련과 식량 조달 등 전투에 대비하고 있었으며, 의병 활동에서 독립군 투쟁까지 계속된 홍범도의 지명도는 일본군에 대해 정치적·심리적 타격을 주었습니다.
무엇보다 홍범도의 유격 전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이었습니다.

홍범도 일지(말년에 고려극장 수위로 근무할 때, 연극공연을 위해 태장춘에게
구술한 약전)는 완루구 전투를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일본(군)영을 야심삼경에 달려들어 재작하고(박살내고), 뿔니묘트(러시아제 기관총)를 걸고 일병(日兵) 대부대에가 내 두르니 쓰러지는 것이 부지기수로 자빠지는 것을 보고, 뿔니묘트 걸어놓으니 막 쓸어지는 것(을) 보고, 기여 들어오는 놈을 자꾸 놓다나니 수십명이 썩어지니 기병이 올라 따라오는 것을 쏘다나니 올라온 놈은 한개도 살지 못하였다.”

청산리전투에서 대승한 이후 북로군정서 총재 서일(徐一)은 1921년 1월 15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독립군의 승전 요인을 다음과 같이 보고합니다.
①생명을 돌아보지 않고 분용결투(奮勇決鬪)하는 독립에 대한 군인정신이
먼저 적의 심기를 압도한 것
②양호한 진지를 선점하고 완전한 준비를 하여 사격성능을 극도로 발휘한 것
③응기수변(應機隨變)의 전술과 예민신속한 활동이 모두 적의 의표에서
벗어나서 뛰어난 것
독립군들의 불굴의 항일정신이야 당연한 제1의 승리요인이며 ②,③번은 독립군과 홍범도 장군의 사격술과 유격술에 대한 표현입니다. 청산리전투 이후 일본군은 자체 평가에서 독립군이 지형지물을 이용한 매복과 기습, 치고 빠지는 기동전, 예상 이외의 강한 화력으로 실패했다고 자평합니다.

일찍이 조실부모하고 15살 때부터 평양 감영에서의 나팔수를
시작으로 맹수를 잡던 포수 생활을 했던 홍범도 장군.
1895년 을미의병부터 터득한 홍장군의 유격전술은 봉오동 전투를 거쳐, 청산리 전투에서 찬란한 빛을 발합니다. 홍범도 장군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홍장군의 유격전술은 남미의 체 게바라와 비교될 만한 탁월한 전술이었다고 평가합니다. 왜냐면 홍범도와 독립군 부대는 이들보다 훨씬 열악한 조건에서 싸워야 했기 때문입니다.

홍범도 장군의 유격 전술의 기반은 동포사회, 즉 민중과 더불어 혼연일체가 되어 싸웠다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나라의 도움은 받지 못하고 굶어 죽지 않기 위해 국경을 넘은 농민들이 새로 터 잡은 만주와 연해주는 독립운동의 생명을 키우는 토양이 되었고 비빌 수 있는 큰 언덕이 되었습니다.
권력과 역사에서 소외된 가난한 자들이 아래로 굴러 내리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다시 밀어 올리는 가장 큰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우리의 독립전쟁은 평범함이 만들어낸 위대한 역사입니다.
한때 머슴으로, 나팔수와 식객승, 포수로 전전했던 평민 출신 의병장
홍범도의 일생은 이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독립운동은 이렇게 우리 주변의 평범함 사람들이 함께했습니다.

최근 우리는 그동안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전염병의 크나큰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어느 선진국보다도 슬기롭게 돌파하고 있지만,
새로운 난관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끝이 보이지 않는도전이 계속 이어지고, 우리의 삶 깊숙이 침입하여 생채기를 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단합과 희망을 꺾을 수는 없습니다.
평범함 속 용기들이 하나하나 모여 억압에 맞서 승리한 독립전쟁의 정신이
광복으로 이어지고, 우리에게 새로운 시대를 여는 힘이 되었듯이,
우리는 반드시 코로나 19의 국난을 극복하고 경제를 더욱 활기차게
되살려낼 것입니다

올해 3·1절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께서 홍범도 장군의 유해봉환을 밝힌바 있지만, 코로나 19로 유해봉환은 잠정 중단하고 있습니다.
평생을 항일 독립운동에 투신한 장군은 백전백승의 '전설적 영웅'이지만
무엇보다 병사들의 어버이 역할을 하는 등 인간적인 리더십의 표상이었습니다.
“나보다는 이름 없이 순국한 수많은 독립군이 영웅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장군의 취지를 받들어, 독립전쟁에 참전한 무명용사들도 ‘독립전쟁기념공원’에
함께 모시고자 합니다.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는 올해 75주년 광복절을 맞아 용산공원에 홍범도 장군과 무명 독립군들을 함께 추모하는 ‘독립전쟁기념공원’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봉오동, 청산리 전투 벌써 100년이 지났습니다. 이제는 그동안 패배와 수난의 역사에 갇혀온 우리의 역사관을 바로잡아 승리와 극복의 역사로 새로운 100년을 열어가야 합니다.
청산리전투는 단순히 개별 전투의 승리가 아닙니다. 3·1운동으로부터 시작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을 거쳐 진행되어오던 투쟁의 과정에서 이루어진 독립전쟁의 자랑스러운 승리이자, 모두가 함께 만들어낸 희망의 승리입니다.

내년 2021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이 우뚝서게 됩니다.‘독립전쟁기념공원’도 내년에 첫 삽을 뜨기를 기원합니다.
임시정부기념관 건립으로 독립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이 국민의 가슴에
부활하듯, 곧 있을 홍범도 장군의 유해봉환과 함께 독립전쟁 영웅들의 ‘독립정신’ 이 우리 모두에게 계승되기를 바랍니다.

참조 : 반병률 <홍범도 장군> 장세윤 <홍범도 일지 재검토를 통해 본 봉오동·청산리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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