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재경 (前 한겨레 신문 부사장)
우리에게 1953년은 무엇을 가리키는 가.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3년간의 동족 살육전 6.25가 끝난 해다. 잠깐! ‘전쟁이 끝난’게 아니라 ‘멈춘 것’이라 써야 정확한 표현이다. 2013년 7월 27일은 6.25전쟁이 종결된 것이 아니라 중단(정전 혹은 휴전)된지 60년이다. 동아시아의 대표적 회년(回年, jubilee)으로 꼽히는 60주년을 경사스런 일이 아니라 몸서리나는 재앙과 연결해야하니 이 얼마나 한심한가.
전쟁이 아닌 전쟁상태, 즉 정전을 두 세대에 해당하는 60년 동안 겪어야했다는 것 자체가 오늘 날의 지구위에서는 아주 드믄 경우에 속한다. 장기간 미해결의 분쟁지역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대부분 인종과 신교의 차이에 연유하는 것이 특징이며 정치 체제와 이념상의 문제로 비평화 전쟁 상태를 10년 이상 유지하는 지역은 1989년 냉전 종식 이후 전무하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민족분단에 이은 60년간의 비평화(정전)상태가 너무 오랫동안 지속된 나머지 보통시민은 자신의 삶을 근본에서 위태롭게 만드는 비정상의 현실을 의식하지 못한다. 심하게 비유하면 공기, 햇빛, 바람처럼 일시적인 기상변화, 이를테면 악취-강우-폭풍의 경우가 아니면 적극적 사고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 것과 유사하다. 민족 공동체의 생존과 일상생활을 제약하는 외부조건을 까맣게 잊고 있는 우리의 모습은 솔직히 말하여 부끄럽기 이를 데 없다.
한반도의 비평화상태가 우리의 특별한 관심사로 주목된 것은 몇 해 전에 발생한 연평도 포격이 있었던 때다. 최근의 일로는 2013년 초봄 북의 핵실험(북한에 대한 유엔 안보리의 제재 결의)과 한미 군사훈련(타격 능력 시위)을 놓고 남북이 험악한 말싸움 장면들을 연출했다. 그러나 이런 국면의 관심은 비평화상태가 전쟁상태로 전환될 것인가 아닌가에 초점이 모아 질뿐 비평화상태(정전협정)의 성격, 특히 그 현재적 변용(變容, variation)이 어떤 것인가에는 이르지 못했다. 따라서 이런 경우는 1953년부터 장장 60년간 계속된 정전체제의 실질 내용을 이모저모로 짚어 보거나 적극적으로 고민하는 것과는 다르다.
일반적 논의 방식대로라면 정전체제의 종식 여부는 어디 까지나 정전 체제를 형성한 정전 협정 체결 당사자들인, 북한-중국과 미국 사이의 문제다. 행인지 불행인지 60년 전 한국은 협정체결에 참여하지 아니 했다. 하지만 한반도의 정전 협정문의 서명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 안위-사활이 걸린 직접적인 이해관계자는 바로 한국인 까닭에 형식논리를 내세워 비평화의 근원을 우리 자신이 외면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이에 곁들여 한마디 더 보탠다면 60 년 전(1953년) 정전협정 체결할 당시 왜 한국정부가 서명행위를 포기 혹은 거부했는가를 장황하게 따지는 것 역시 지금 이 순간에는 한가로운 짓이다.
단도직입하여 60년간 계속된 한반도의 비평화 정전체제를 안정된 평화체제로 바꿀 수는 없느냐는 것이 오늘의 핵심적 과제다.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겉으로는 평화를 내세우며 실제로는 전쟁을 일삼아 무고한 인명을 해치고 땀 흘려 마련한 생존자료와 생활수단을 약탈 또는 파괴하는 악행을 되풀이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1천년 이상 단일 민족국가로 존속해 온 한반도가 계몽-합리가 지배하는 근대 세계에서 60년 간 비평화 ‘준 전시상태’로 모자라 더 이상 계속될 수도 있다는 근거로 원용된다면 그것은 웃음거리다. “인간 늑대론(homo homini lupus)"은 근대의 문턱에서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일삼았던 서구 강대국가들의 자기정당화를 위해 써먹고 내버린 사이비 이론에 불과하다. 우리민족의 미래를 위험스럽게하는 비평화체제(정전협정)를 평화체제로 바꾸겠다는 결의에는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사업가를 포함한 한국의 중간계층 다수는 보통시민들의 정전협정에 대한 단순한 무관심과는 달리 정전이라는 외형 속에 자리 잡은 실질 ‘콘텐츠’에 유의하며 남북 문제를 조망한다. ‘무관심층’과는 상당히 구별된다 하더라도 정전협정 60년이 내포한 전쟁위험성을 외면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전자와 후자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 여기서 말하는 ‘콘텐츠’가 <1972년 남북공동선언>,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및 비핵선언>,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2007년 납북정상의 10.4 합의>등의 남북 언약들임은 두 말할 나위없다. 남북한 정부가 비록 부분적이긴 하나 인적 교류와 물자 교환을 성사시킨 까닭에 정전 협정의 비평화 요소들을 무의미 하게 만들지 않았나라 믿고 싶은 심리상태이다. 전쟁이 아닌 평화를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평가할만하다. 이러한 시각은 남북관계가 엄존하는 <1953년 정전협정 문서>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큰 변화가 있었다는 측면을 주목하는 것이다. 한반도의 남과 북을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남북한 정부가 6.25전쟁의 수행자였던 강대국들(미국, 소련, 중국등)의 현상 유지(status quo) 노선을 앞질러 나갔다는 의미다.
정전 60년 비평화 시대에 특기할 일은 시점(時點)과 시각에 따라 변화와 불변이라는 상반된 평가가 병존했고 지금도 병존하는 것이다. 위의 ‘추월 론’은 변화를 중시하는 사례의 하나다. 정전 협정하의 한반도에는 접촉-교류라는 내부변화와 함께 소련 권 붕괴에 따른 냉전 종식과 중국의 G2 부상으로 표현되는 일찍이 상상하지 못했던 일대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이것은 장기적으로 정전협정의 소멸될 운명을 예고하는 결정적 변수인지 모른다. 그러나 장기적 변화의 추이가 단기적 혹은 중기적 평화(전쟁가능성의 극소)를 담보하느냐 묻는다면 그 답변을 간략하게 'yes(그렇소)‘라 하기란 힘들다. 적어도 정전 협정이 실존하는 한에는 그렇다.
전쟁의 재발 개연성을 안고 있는 정전 협정의 대칭 국면은 전쟁 종결 협정(강화조약 혹은 평화조약)이다. 평화조약을 체결한 국가들 사이에도 긴장관계가 조성되고 마침내 전쟁상태로 전이하는 경우가 근대에 들어와서도 무수히 존재했지만 중단된 상태의 전쟁의 원상복귀와는 전혀 성격을 달리한다. 전자가 전쟁을 반대하는 정치적 쟁점들을 소화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라면 후자에는 전쟁반대와 평화 희구요구가 정치 쟁점화 하지 못하는 체약이 작용한다. 이것은 결코 언어의 유희가 아니다.
1953년 7월의 6.25전쟁 정전협정체결 이후 60년간 전쟁 당사자였던 남북한은 일관되게 내부 통치의 큰 흐름은 전쟁 대비 태세였다. 자유민주주의 ‘쇼윈도우’로 자처했던 한국에서 전쟁수행을 본업으로 하는 군인들이 통치기구를 직접 장악하거나 대내외 중요정책을 실질적으로 좌지우지 한 것을 우리 모두가 보았고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다. 국민주권의 민주주의 원칙을 유린할 때 이에 저항하는 민중을 억압하는 화두를 ‘준 전시’라는 해묵은 표현이 장식하지 않았던가.
한편 북한의 이른바 '선군정치‘가 어떤 원인의 산물이건 간에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전무후무한 슬로건이다. 사회주의를 포방하면서 공공연하게 인민과 당을 제쳐놓고 군을 앞자리에 세우겠다는 것은 반세기 이상 존속된 전쟁대비태세(정전협정 체제)와 무관치 아니하다고 믿는다. ’선군정치‘라는 슬로건이 통치 방식으로 그치지 않고 북한의 자원배분을 군사분야 위주로 왜곡한 것 역시 부인하지 못할 현실이다.
우리는 장장 60년을 비평화 상태로 살아 왔다. 전쟁중단 협정을 전쟁종결협정 즉 평화협정으로 바꾸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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