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일본 이시카와 현 가나자와의 미쓰비시 공장 동굴 입구. 김상기 충남대 국사학과 교수가 답사단원들에게 당시 조선 노동자들의 삶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김성배 기자>
미쓰비시, 한반도 전역에서 강제동원해 군수물자 조달 … 30일 미쓰비시 상대 손해배상소송 판결 주목
동해와 맞닿은 일본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의 깊은 산속 어둑하고 습한 동굴. 69년전 이맘 때 조선 노동자들은 이 곳에서 군수물자를 생산했다.
아래쪽 도로에서 산속 깊은 곳까지 2.5㎞에 이르는 숲길은 조선 노동자들이 도로를 내면서 이동한 흔적이다. 미쓰비시의 항공기 엔진 조립 공장이라는 사실을 모른채 이곳까지 징용됐던 600여명의 조선 노동자들은 일제 패망까지 6개월여를 이곳에서 외부와 차단된 채 고단한 삶을 이어갔다.
곧 일본이 전패하고 해방을 맞았지만, 이들의 생사 여부는 명확치 않다. 현재 사료에는 600여명의 조선인이 이곳에 끌려와 강제노동을 했다는 기록만 있을 뿐이다.
미쓰비시는 가나자와 지역에만 200여곳의 산속 동굴을 만들어 조선 노동자들을 징용해 군수물자를 생산·수송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은밀하게 조성한 이곳 생산현장은 연합군의 일본 대공습에도 발각되지 않은채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
◆동굴에서 조선 노동자 군수물자 생산 = 당시 가나자와에 살던 조선인은 모두 2000여명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들은 인근 미쓰비시 공장에 같은 조선 노동자가 강제징용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당시 일본이 얼마나 은밀하게 군수공장을 운영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되고 있다.
지난 21일 미쓰비시 공장터에서 만난 타무라 호쿠리쿠대학교 독일어과 교수는 "이곳에서 조선인 노동자들이 생산하던 항공기 엔진은 미쓰비시 나고야 군수공장으로 이송했다"며 "하지만 일본 패망 후 이곳에 강제동원된 조선인의 생사를 확인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타무라 교수는 일본 침략전쟁을 비판하며 역사 바로쓰기를 실천하고 있는 대표적 활동가다. 그는 "독일은 전후 150만명에 대해 8조원을 풀어 배상에 나섰다"며 "전쟁을 수행하고 강제동원을 하지 않은 기업도 배상 자금을 낸 독일과 비교했을 때 일본은 진정으로 과거사를 반성한다고 말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일제 강점기 조선 노동자들의 빼앗긴 삶은 미쓰비시 뿐 아니라 구 일본제철 등 군수물자 생산 회사가 있던 일본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부족한 군수물자를 조달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조선 노동자를 징용했고, 이후 노동자들은 노동운동 조직을 만들어 독립운동에까지 나선 것은 최근에서야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평가는 아직 초보 단계다. 당시 그들이 몰수당했던 재산과 하루 12시간 이상 노역을 하고도 받지 못한 급여에 대한 배상은 해방 후 지금까지도 해결하지 못한 과제로 남아있다.
◆오는 30일 미쓰비시 배상 판결이 전환점 = 이런 가운데 법원은 일본의 신일철주금(당시 구 일본제철) 주식회사가 오사카로 강제동원한 조선 노동자 4명에 대해 각 1억원씩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려 관심이 커지고 있다.
서울고등법원 민사19부(부장판사 윤성근)는 지난 10일 파기환송심에서 "일본 신일철주금 주장은 세계 문명국가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하고 있고 일본 헌법 역시 과거 정부가 일으켰던 침략전쟁의 참화에 대한 반성에 기초해 세계평화의 추구를 헌법적인 가치로 삼고 있는 점 등은 국제적이고 보편적인 질서에 비추어서도 용납될 수 없다"며 "침해행위의 불법성의 정도와 기간 및 고의성, 그로 인한 조선인 노동자들의 피해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피고는 위자료로 원고 1인당 1억원을 지급할 것을 정한다"고 판시했다.
이번 판결은 강제동원 조선인에 대해 일본 회사가 배상을 명령한 최초의 결정으로 한국 사법사에 새로운 역사로 기록됐다.
신일철주금 뿐 아니라 미쓰비시 공장에 대한 배상 결정도 눈앞으로 다가왔다. 미쓰비시는 일본정부의 알선과 강제징용으로 조선인을 비롯해 중국인의 노동력을 담보로 회사를 키워온 곳이다.
미쓰비시 중공업의 히로시마 조선소에 강제동원됐던 조선 노동자들과 그의 후손들은 미쓰비시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오는 30일 부산고등법원의 미쓰비시 손해배상 결정 사건의 판결이 주목되고 있다.
김성배 기자 sb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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