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9기 독립정신 답사단 日 항일 독립운동 사적지 가다 - (2) 일본의 독립운동 사적지(상) 도쿄
이봉창 의사 등 발자취…민족의 슬픈 역사 몸소 체험
“독립과 목숨 바꾼 한분 한분의 희생 절대 잊지 말아야”
“전 국민이 한끼 굶어야 한다.” 일왕(日王)을 향해 수류탄을 투척한 뒤 경찰에 체포된 이봉창 의사가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사형이 집행된 후 김구 선생이 남긴 유명한 일화다. 임시정부가 이봉창 의사를 잃은 슬픔이 그만큼 컸다는 의미다.
독립운동가 이봉창 의사와 김구 선생은 1931년 상해 임시정부에서 일본 요인 암살 비밀조직인 한인애국단에서 만났다. 이때 김구 선생이 청년 단원을 모집했고, 일본어에 능한 이봉창 의사와 일왕폭살 계획을 추진한다.
중국군으로부터 수류탄을 입수해 그해 12월13일 안공근(안중근 의사 막내 동생)의 집에서 양손에 수류탄을 쥐고 선서식을 마친뒤 17일 도쿄에 성공적으로 잡입했다. 이어 일본 국왕 히로히토(裕仁)가 도쿄 교외에서 관병식(觀兵式)에 참가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1932년 1월 8일 오후 2시 이 의사는 시민으로 가장해 사쿠라다몬 앞에서 관병식을 마치고 마차를 타고 돌아오는 히로히토를 향해 수류탄을 던졌다. 그러나 기수와 근위병에게 부상을 입혔을 뿐 일왕을 사살하지는 못했다. 당시 이 의사는 폭탄을 투척한 후 가슴에 품고 있던 태극기를 꺼내 “대한독립 만세”를 3번 외치고 경찰에 체포됐다. 그해 10월 비공개 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10일 오전9시 2분 이치가야형무소에서 순국했다.
김상기(충남대 국사학과 교수) 제9기 독립정신 답사단 부단장은 지난달 19일 사쿠라다몬 앞에서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60여명의 답사단을 향해 목이 터져라 이 의사의 일본에서의 발자취와 독립운동에 대해 역설했다. 대로변인 이 의사의 투탄지 사쿠라다몬 주변에는 경시청, 법무성 등 정부기관 밀집해 있다.
답사단이 이 의사 투탄지를 뒤로하고 왕궁이 시작되는 안경다리(이중교) 앞에 도착하자 경시청 소속 경비원이 화들짝 놀라 초소에서 뛰어 나왔다. 경비원은 플래카드나 마이크 사용, 동영상 촬영을 금지한다는 말을 남기고 초소로 사라졌다. 답사단이 만난 첫 일본인(경비원)으로부터 한류의 역풍, 혐한류를 온 몸으로 느꼈다.
안경다리는 해자를 넘어 왕궁으로 통하는 유일한 길이다. 사쿠라다몬은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10m높이의 석축과 폭 15m로 해자로 둘러싸인 요새다. 이 안경다리에도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가 숨쉬고 있다. 1928년 김지섭 의사가 이 다리에서 일왕을 향해 수류탄을 투척하다 현장에서 체포돼 지바형무소에서 옥사했다.
사쿠라다몬을 둘러본 답사단 일행은 일본 심장부에서 조선의 독립을 외친 한국YMCA회관의 2ㆍ8독립선언기념비로 향했다. 유학생 중심으로 결성한 조선청년독립단은 1919년 2월8일 오전 10시 독립선언서와 결의문을 작성해 일본의 각국 대사관, 국회, 신문사와 잡지사 등에 우편으로 발송하고 오후 2시 YMCA회관에서 유학생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도쿄지역 유학생 600여명이 참석해 일제의 식민통치를 부정하고 조선 독립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이 사건으로 61명의 유학생이 체포됐고, 9명이 재판에 회부됐다. 재판을 받은 유학생들은 이치가야형무소에서 형을 살았다. 이치가야형무소는 이봉창 의사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으며, 또 김지섭ㆍ박열 의사 등이 옥고를 치른 슬픈 역사의 현장이다.
현재 옛 형무소 터는 조그마한 공원으로 조성돼 있다. 공원 주변은 주거지역이지만 인적이 없다. 미끄럼틀은 보수공사 중이고 녹슨 철봉과 벤치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1평 남짓한 터에 세워진 형사자위령탑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 답사단은 2ㆍ8독립만세운동 후 유학생들이 만세시위를 벌인 히비야공원을 찾았다. 당시 유학생들은 독립선언서 낭독 직후 경찰이 들이닥치자 YMCA건물을 빠져나와 히비야공원에서 만세운동을 펼쳤다. 12일도 이 공원에서 시위하고 16명이 체포됐으며, 2월23일에도 시위를 계획했으나 경찰에 정보가 빠져 나가 관련자들이 체포됐다. 이에 유학생들은 대거 동맹휴학하고 귀국해 3ㆍ1운동에 참여했다.
답사단은 이 밖에도 도쿄역과 관동대지진위령비를 둘러보고 도쿄지역에서의 독립운동 사적지를 둘러 보며 힘 없는 민족의 슬픈 역사를 피부로 느꼈다.
이명진(숙명여대 역사문화학과 2학년)대원은 “우리 민족의 역사가 살아 숨쉬고 있는 일본 내 독립운동 사적지를 둘러보고 깜짝 놀랐다”며“미래 주역인 우리 학생들이 올바른 역사관을 갖고 한일관계에 적극적으로 대처 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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