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가 최근 서훈 취소 결정을 한 친일인사 19명은 대부분 1920년대 독립운동을 했다가 중일전쟁이 시작된 1930년대 말부터 친일로 전향한 이들이다.
윤치영 초대 내무부 장관은 일본과 미국 유학 시절의 독립운동을 인정받아 1982년 건국포장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1938년 ‘전향성명서’를 발표한 뒤 1940년 “신동아 건설을 위하여 신성한 사명을 다하고 있는 황군의 무운장구를 축도합니다”라는 내용의 전쟁 찬양글을 <청년>지에 기고하고, 전쟁협력단체인 조선임전보국단 평의원 등도 맡았다.

<황성신문>에 을사늑약을 반대하는 논설 ‘시일야방성대곡’을 쓰는 등 항일 언론활동이 인정돼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장지연 <황성신문> 주필은 한-일 강제병합 뒤 꾸준히 친일행위를 했다. 1918년부터 4년간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한일합방 5년간 조선인의 삶이 크게 나아졌다” 등 식민통치를 미화·옹호하는 글을 썼다.

이번에 서훈이 취소된 독립유공자 중에는 개신교·불교 등 종교인들이 많다. 해방 뒤 동국대 이사장과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이종욱은 대한민국임시정부 활동으로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고 국립묘지에 묻혔다. 그러나 그는 주지로 있던 월정사의 승려 4명을 일본군 지원병으로 보내고, <매일신보>에 징병을 적극 권유하는 글을 썼다. 해방 뒤 친일혐의자로 지목돼 승권이 3년간 정지됐지만, 신탁통치반대 국민총동원위원회 강원도 대표를 지내는 등 정치활동을 하면서 재기했다.

불교계의 대흥사 주지 박영희(건국훈장 애족장), 범어사 주지 차상명(˝), 해은사 주지 허영호(˝), 개신교계 목사 김우현(˝), 김응순(˝), 남천우(˝), 유재기(˝), 최지화(˝), 천도교계 최준모(˝) 등은 국방헌금 모금, 전쟁 승리 기원 종교의식, 전쟁협력단체 참가 등의 친일행위로 서훈 취소가 결정됐다.

황해 해주 만세시위를 주도했던 박성행(건국훈장 애국장)은 1942년부터 출옥한 사상범이 독립운동을 하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촉탁 보호사’로 활동했으며, 황해도 평산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한 이동락(˝)과 노동운동에 참여한 이항발(˝)도 사상자 전향단체인 대동민우회에 참여한 사실이 인정됐다.

한편 행정소송이 진행중이어서 이번에 서훈 취소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김성수 <동아일보> 창업주는 3·1운동 참가와 언론활동으로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았다. 하지만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와 <친일인명사전> 모두 그가 징병을 선전·선동하고 전쟁협력단체인 조선임전보국단·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에 발기인으로 참여하는 등 친일행위를 했다고 지적했다.

친일파의 정치사상을 연구한 이태훈 연세대 강사는 “일반적으로 친일파들은 1920년대는 독립운동을 했다가 1930년대 중일전쟁 등을 보며 조선 독립에 회의를 품고, 일본의 팽창에 편승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전향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