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철 박사(현 국가인권위원회 기획조정관)





올해 4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5·18 광주 민주화운동’ 관련 기록물들은 세계기록유산에 대한 기존 통념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이전에는 옛날 문서만 등재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으나, 5·18 기록물 등재로 현대사 기록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실제로 한국학중앙연구원 현대한국연구소는 새마을운동중앙회와 함께 새마을운동 자료 등재를 추진 중이며, 한국방송도 ‘이산가족찾기’ 방송 기록물을 등재할 채비를 하고 있다.
지난 21일 현대한국연구소는 5·18기록물 등재추진위원회 추진단장이었던 안종철 박사(현 국가인권위원회 기획조정관·사진)를 초청해 강연을 들었다. 안 박사는 “국내 첫 현대사 기록물 등재였던 데다, 보수단체가 유례없는 훼방을 놓고 국가의 지원도 기대하기 어려워 무척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1986년부터 ‘광주 현대사 사료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며 5·18 관련 기록물들을 직접 수집·관리했으며, 광주시청에서도 ‘5·18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자료들을 갈무리해왔다. 그 뒤 인권위에서 일하다가 2009년 9월 ‘석연찮은’ 인원감축으로 면직되면서, 이때부터 5·18 기록물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추진 과정은 가시밭길이었다. 문화재청을 거쳐 정부 자격으로 신청하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5·18 기록물은 추진위원회가 개인 자격으로 본부에 직접 신청했다. 시간이 촉박했고, 정부의 지원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기록 원본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기록원, 국회도서관, 육군참모총장 등의 동의를 받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컸다고 한다. 보수단체들이 유네스코에 찾아가 반대 청원서를 내는 바람에 심사가 한 차례 보류되기도 했다. 외교통상부에서 유네스코 본부 쪽에 “국가에서 모든 정리가 끝난 사안”이라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심사가 계속 진행될 수 있었다고 한다. 안 박사는 “국가 자격으로 신청했다면 이런 혼선은 없었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여러 어려움을 겪으면서 배운 것도 많았다”고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신청서 작성에서 ‘세계사적 의미’를 얼마나 잘 밝혀주느냐입니다.”

해당 기록물이 세계 역사와 문화에 무엇을 기여했느냐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안 박사는 “광주민주화운동이 필리핀, 버마(미얀마) 등 동남아시아 민주화 운동에도 큰 영향을 끼쳤으며, 시민들의 노력으로 기록물들이 꾸준하게 지켜졌다”는 점을 강조했다.

2년 동안의 소송을 거쳐 지난달 인권위에 복직한 안 박사는 앞으로 광주시에서 추진하는 ‘5·18 아카이브’작업 등에도 참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