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청사 '지방문물단위' 지정 독립운동 발자취 남아
애국지사 후손등 106명 등'광복60주년기념 임시정부유적지' 답사
광복 60주년을 맞이하는 2005년에 민족정기를 바로세우고 조국의 평화통일의 기틀을 마련하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대한민국의 법통을 이어준 임시정부의 맥을 찾는 일로 지난 5일부터 16일까지 ‘광복60주년기념 임시정부유적지답사단’이 구성되어 중국에 있던 임시정부(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bublic of Korea)의 과거와 현재를 찾는 작업이 추진됐다.
임시정부유적지답사단은 임시정부기념사업회 김자동 회장을 비롯, 김규식 박사 손녀인 김수진 등 애국지사 후손 등을 포함한 각계인사 46명과 48개 대학에서 선발된 60명 등 총 106명으로 구성됐다.
12일간 13,000킬로미터에 달하는 임시정부유적지답사 대장정에 대해 임시정부가 위치했던 지역의 과거와 현재를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에서 수집한 자료와 현장에서 직접 촬영한 사진 등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임시정부 이동경로.
김신부로에서 임시정부 첫 회의… 상해서만 13년간 존속
◇상해(上海)
일본이 한국을 강제로 병합하자 애국지사들은 해외 독립운동기지를 건립한다는 이념아래 해외로 망명하면서 상해를 주요 거점으로 삼았다. 1919년 4월 10일 김신부로(金神父路)에서 임시의정원 회의가 처음으로 열렸고 이후 상해에서만 12차례 이상 소재지를 옮기는 등 1932년 5월까지 13년 동안 존속했다.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가 일제의 천장절 기념식과 상해사변 승리축하식이 홍구공원(현 魯迅公園)에서 열리는 것을 기회로 삼아 축하식장에 폭탄을 던져 중국주둔 일본해군 백천의칙 대장 등 10여명을 살상하는 의거가 일어났다. 일본 형사대는 임시정부청사(上海市 盧灣區 馬當路 306-4호)를 습격해 많은 자료를 탈취해 갔지만 다행하게도 이곳에 있던 임정 요원들은 미리 피신해 화를 면했다.
상해에 있던 임시정부 청사는 현재 본래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은 거의 없지만 마당로의 청사만은 건물이 복원되어 대한민국임시정부구지진열관(大韓民國臨時政府舊地陳列館)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상해시지방문물단위(上海市地方文物單位)로 지정되었다.
상해임시정부구지진열관 입구,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일어나자 일본 형사대가 임시정부청사를 습격해 많은 자료를 탈취해 갔지만 다행하게도 이곳에 있던 임정 요원들은 미리 피신해 화를 면했다.
윤봉길의사 의거 기념비(노신공원).
◇항주(杭州)ㆍ가흥(嘉興)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일어나자 일본의 압박으로 상해를 떠난 임시정부 요원 대부분은 항주시와 가흥원으로 옮겨와 1935년까지 약 3년 6개월간 머물렀다. 가흥현 일휘교(현 日暉橋 17호) 1층에 임시정부 청사가 있었으며 임시정부 요원들은 2층을 사용했다.
그러나 김구는 일제가 현상금까지 걸면서 체포에 혈안이 돼 있는데다 일휘교에 임정 요원들이 한 곳에 모여 있으면 안전한 피신처가 될 수 없으므로 일휘교 인근에 있는 매만가(현 南當弄 梅灣街 76호)로 거처를 옮겼다.
흰색천 걸리면 집으로 적색천 걸리면 피신
김구는 흰색 천이 집에 걸리면 집으로 들어오고 적색 천이 걸리면 피신했다. 또한 매만가의 뒷문이 가흥의 명소인 남호(南湖)와 연결돼 있으므로 위급할 때는 비상구를 이용해 1층으로 내려가 처녀뱃사공 주애보의 배를 이용 피신하기도 했다.
가흥 일휘교, 임시정부 청사는 1층에 있었고 2층에는 임시정부 요인들인 이동녕, 이시영, 조완구와 박찬익, 엄항섭, 민필호, 김의한 등의 가족들이 살았다.
가흥 매만교 김구 탈출용 2층 마루 구조, 김구는 위급한 경우 마루 통로를 통해 1층으로 내려가 건물 뒤에 대기한 나룻배를 타고 피신했다.
◇진강(鎭江)ㆍ남경(南京)ㆍ무한(武漢)ㆍ장사(長沙)
임시정부의 국무위원 대부분은 1935년부터 2년간 진강에 있었지만 1937년 중ㆍ일 전쟁이 일어나자 남경으로 옮겨 이미 도착한 조선민족혁명당 등 일부와 합류했다. 김구와 대외활동을 하고 있던 임시정부 요원들은 중국 당국(장개석 측근 및 국민당 등)과 잦은 접촉을 위해 남경에 주로 있었으나 국무회의 등이 있을 때는 진강으로 왔다.
일본군이 상해 근교에 상륙해 중국의 수도였던 남경으로 진격하자 1937년 11월 남경에 있던 임시정부 요원들은 배편으로 장강 상류 쪽으로 출발했다.
남경을 떠난 항일단체 중 민족혁명당 등 조선민족전선연맹 계열 대부분 한구(현재 무한시의 장강 동부)에서 머무르면서 한구가 함락될 때까지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반면에 임시정부 일행은 무창시(현재 무한시의 강남부분)에서 기차 편으로 후난성 장사시에 도착했다.
◇광주(廣州)ㆍ불산(佛山)
1938년 7월에 광주에 도착한 임시정부 요원들은 광주 동산구 백원에 체류하다가 9월부터 불산현에 청사를 마련하고 많은 가족들이 옮겨왔다. 손문의 정부가 세워진 뒤 임시정부와 이들과 각별한 관계를 가지면서 광주는 한국독립운동의 중요한 무대가 됐다.
황포군관학교(廣州市 長洲島 黃捕, 현재 육군군관학교 기념관)가 세워지자 광주의 여러 혁명기지에 한인 청년들이 몰려들었고 중산대학(海珠區 新港西路 125호)에도 교육에 관심 있는 많은 청년들이 지원했다. 그러나 10월에 일본군이 광동에 상륙하여 광주와 불산이 위급하게 되자 임시정부는 곧바로 서쪽으로 피난했다.
광주에는 장개석의 우익 쿠데타에 반대해여 공산주의자들이 1927년 중국 최초의 국제공산당 정권을 수립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후 이들은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당에게 패하면서 약 5,000여명이 희생됐는데 이들 희생자들 중에는 조선인 황포군관학교 생도와 중산대학의 재학생 150여명도 포함되었다. 조선열사기념비는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는데 현재 광주기의열사능원 안에 있다.
광주 황포군관학교(현재 육군군관학교 기념관) 입구, 황포군관학교가 세워지자 광주의 여러 혁명기지에 한인 청년들이 몰려들었고 중산대학에도 교육에 관심 있는 많은 청년들이 지원했다.
광주 조선열사기념비, 조선열사기념비는 광주기의열사능원 안에 있으며 국민당과 공산당과의 전투에서 황포군관학교 생도와 중산대학의 재학생 150여 명이 희생된 것을 추모하고 있다.
임시정부 요인거주 추정지 '임시정부기념관' 설립
◇계평(桂平)ㆍ유주(柳州)ㆍ계림(桂林)
1938년 10월 배편으로 불산을 출발한 임시정부 요원들은 10개월에 걸친 고난 끝에 유주에 도착해 1939년 4월까지 머물렀다. 현재 유주에서는 임시정부 요인들이 거주했던 장소로 추정되는 곳에 ‘임시정부기념관(柳州市 柳石路 1호 20동)를 만들어 2005년 7월 개관했다.
답사단은 2005년 8월 11일, 광주에서 기차로 15시간에 걸쳐 유주역에 도착해 곧바로 임시정부기념관에서 답사단원 전원이 기념관 보관용 대형 천에 각자 방명록을 작성하는 행사를 가졌다.
유후공원(柳候公園)에는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임시정부 계열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체) 창립지가 있으며 임시정부 국무위원들이 6개월간 기거하며 집무를 보았던 건물(寥磊公館)은 당시 27군사령관이 머물던 건물로 현재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계림은 조선의용대와 관련된 곳이다. 조선의용대가 1938년 10월 무한에서 결성되고 이후 계림으로 옮겼다. 조선의용대는 그 후 주로 호북성 북구 노하구(老河口)를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1941년 광복군 제1지대로 편입됐다. 현재 조선의용대 본부가 있던 곳은 칠성공원(桂林市 七星公園)으로 변했다.
유주 임시정부기념관, 중국 정부는 2005년 7월 임시정부 요인들이 거주했던 장소로 추정되는 곳에 임시정부기념관을 개관했다.
유주 임시정부기념관에서 대형 천에 방명록을 작성하는 장면, 임시정부유적지 답사단원 전원이 방명록을 적었으며 기념관에서 영구 전시할 예정이다.
유주 요뢰공관, 임시정부 국무위원들이 6개월간 기거했는데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기강(綦江)ㆍ중경(重慶)
임시정부의 선발 인원들은 1938년 말에 이미 중경에 도착했고 대부분의 간부와 가족들은 1939년 4월에 유주를 출발해 기강에 도착했다. 현재 임시정부 요원들의 기거지(古南鎭 上升街 107호)가 보존돼 있으나 위험 건물로 파악돼 근간 철거 예상 대상이라는 설명이며 토교(土橋) 한인 거주터(巴南區 土橋重銅集團 銅管有限責任公司)에는 한인촌구지(韓人村旧址)라는 기념비가 설치돼 있다.
중경에서의 임시정부는 여러 번 옮겼는데 오사야항(吳師爺巷, 和平路 2항 5,6,7호)은 당시의 원형이 거의 훼손된 상태이지만 건물 입구에 중경시문화국에서 세운 대한민국임시정부구지(大韓民國臨時政府舊址)라는 표지석이 설치돼 있다.
기강 상승가 17호, 임시정부 요원들이 기거하던 장소로 원형은 보존돼 있으나 위험 건물로 지정돼 철거 대상이라는 설명이다.
기강 토교 한인촌구지, 임시정부 요인들이 살고 있던 지역은 동관유한책임공사가 자리 잡고 있으며 표지석만 남아있다.
오사야항 화평로 제3청사구지 표지석, 중경 제3청사가 위치했던 건물은 거의 훼손되었고 현재 대한민국임시정부구지라는 표지석이 설치돼 있다.
중경임시정부청사 입구, 중경은 한국관광객이 많이 찾는 서안 진시황릉, 장강삼협, 장가계 등과 연결되는 교통요충지이므로 많은 관광객이 방문한다.
◇광복60주년중경기념식
2005년 8월 15일 광복60주년중경기념식이 임시정부 유적답사단과 현지 동포 등 200여 명이 참석해 중경임시정부청사(蓮花地 38호, 현 重慶大韓民國臨時政府舊址陳列館)에서 열렸다. 임시정부 청사에서 정부 주관의 광복절 기념식이 열린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독립기념관 관장인 김삼웅이 기념사를 했고 전 광복회장 윤경빈(광복 당시 임시정부 청사 근무)이 해방 60년 만에 처음으로 임시정부 청사에서 만세삼창을 선창했다. 이 행사의 주최는 국가보훈처이고 주관은 독립기념관,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중경대한민국임시정부구지진열관이다.
광복60주년중경기념식에서의 만세삼창, 좌측 전열의 5명은 생존해있는 독립군 지사들이다.
글·사진:이종호 (mystery123@korea.com) | 등록일 : 2005.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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