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리움 ‘코리안 랩소디’전
역사는 박제된 기억이 아니다. 거부할 수 없는 현재이고, 껴안아야 할 미래다. 삼성미술관 리움이 한민족의 역사꺼내기 작업에 나섰다. 역사를 개념이 아닌 이미지로 해석했다. 6월5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마련한 기획전 ‘코리안 랩소디-역사와 기억의 몽타주’다. 근대화 이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압축적 산업화를 이룬 우리나라의 다양한 풍경이 80여점의 그림, 다큐멘터리, 설치, 사진, 우키요에(일본의 다색목판화) 등에 담겨 있다. 리움 소장품과 개인 소장품, 각 미술관에서 대여해 온 작품들로 구성됐다. 특히 카메라가 없던 시절 사람의 일상을 담던 우키요에가 전시되기는 국내에서 처음이다.
지난 17일 시작된 전시는 초반인데도 하루 평균 200여명의 관람객이 찾고 있다고 한다. 특히 중·고생들을 위한 워크북의 인기가 높다. 벽에 걸린 그림을 설명하는 차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16쪽짜리 감상용 워크북의 ‘1번 과제’는 서용선 작가가 2004년에 그린 ‘동학농민운동’이다. 작품을 보고 어울리는 단어에 동그라미 치기, 동학농민운동과 관련된 민중의 노래 중 ‘녹두꽃’은 누구를 의미하는지 등의 질문으로 구성됐다. 정답 ‘정봉준’은 그림 밑의 은박 부분을 동전으로 긁으면 나타난다. 그림에 대한 학생들의 호기심은 국사와 사회 교과목까지 생생하게 접목된 통합 미술교육으로 이어진다.
전시는 블랙박스와 그라운드 갤러리 두 공간에서 이뤄지고 있다. 한국 근현대사의 키워드를 집중 조명하기 위해 일정한 주제에 대한 50~80년의 시간차를 비교해 보여준다. 현대 작가들의 작품과 근대 작가들의 작품을 나란히 전시하는 형식이다. ‘랩소디’는 형식이 자유로운 환상적인 기악곡을 뜻한다. 한국사회의 급속한 변화와 민족의 이야기가 랩소디처럼 자유로운 형식으로 표현하는 것을 지향했음을 반영한다.
‘1부-근대의 표상(1876~1945)’을 주제로 한 블랙박스 공간에는 개항 이후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을 표현한 작품들이 전시된다. 가라앉은 조명의 전시장에 들어서면 휴버트 보스(1855~1935)가 개화기 덕수궁에서 바라본 경복궁과 경회루의 모습을 그린 ‘서울풍경’(1899)이 한눈에 들어온다. 일제강점기 시절 닫혀 있는 광화문을 비단에 그린 안중식의 ‘백안춘효’(1915)도 바로 옆에 걸려 있다. 경복궁과 광화문의 닫힌 문은 시대의 닫힌 상황을 함의한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의 비통함을 표현하는 박생광의 ‘명성황후’(1983)는 소복차림으로 바닥에 누운 명성황후의 모습과 조선 궁녀의 절규를 담았고 그 옆에 명성황후의 아들인 순종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옆 공간에는 일본정부의 정치선전용 목판화였던 16점의 우키요에가 전시되고 있다. 1882년 임오군란 당시 일본 공사가 흥선대원군을 호위하는 모습, 1894~1895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당시의 경성과 평양의 모습 등을 묘사했다.
1930년대 신여성의 사진과 당시의 모습으로 분장한 작가의 딸을 함께 묘사한 조덕현의 ‘리플렉션 리플렉션’(2011)은 두 여성의 사진에 천으로 만든 긴 치마를 붙여 관람객 바로 앞까지 설치했다. 지난 2월 영화 <파란만장>으로 베를린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한 박찬경의 다큐멘터리 ‘비행’(2000)도 감상할 수 있다. 남북정상회담의 과정을 통해 분단 현실과 통일에 대한 불안정한 미래를 보여준 작품이다.
‘2부-낯선 희망(1945~2011)’을 주제로 한 그라운드갤러리에는 해방 이후 현재까지의 근현대사를 ‘역사적 사실과 기억’으로 집중시킨다. 이쾌대의 ‘해방고지’(1948)는 기뻐하는 사람들과 비통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한 폭의 캔버스에 그리면서 식민지배와 전쟁이 남긴 상처와 희망을 말한다.
한국전쟁 후 한국의 급격한 성장 과정은 ‘박정희’로 해석됐다. 이종상의 ‘작업’(1962)은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이 국가재건을 목표로 산업화에 올인하던 산업현장의 역동성을 표현한다. 그 옆에는 44년 후의 평가가 담긴 박영근의 ‘박정희의 무궁화/유지자사경성’(2006)이 걸려 있다. 당시의 새마을운동, 유신과 반공, 산업화와 민주화가 입체적으로 작품화됐다. 서도호의 ‘나의 39년 인생’(2006)은 유치원복부터 중·고교 교복, 교련복, 군복 등 거친 제복으로 시대를 표현한 것이다.
관람 요금은 성인 7000원, 초·중·고생 4000원. 20인 이상 단체는 관람료가 할인된다. 전시해설자인 도슨트 프로그램은 화~일요일 오전 11시, 오후 1시와 3시 진행된다. 모바일 전시도록은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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