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화북지역 항일무장투쟁지 답사기 <마지막 편> 정만기
8월15일 베이징 티엔팡호텔 대연회장에서 열린‘광복61주년 북경기념식’에는 80명의 항일무장투쟁 유적지 답사단원과 재중국 항일투사후손들의 감격적인 자리가 마련되었다.
님 웨일즈가 쓴 ‘김산의 아리랑’으로 유명한 독립운동가 김산(본명 장지락)의 유일한 혈육인 아들 고영광 씨, 의열단 참모로 '한 혁명가의 회고록'을 쓴 독립운동가 유자명(본명 유흥식)의 딸 유덕로 베이징과학기술대 교수,
용맹을 중국대륙에 떨친 무정장군의 손녀 등억진씨, 2대 독립운동가 최치해의 장남 최위민 북경일보기자, 김철남의 아들 정평, 딸 인평, 애평씨, 군가 작곡가로 유명한 정율성의 딸 정소제 교수, 마초군(본명 이흥관)의 아들 마영일 북경시 공무원등 10여명과 주중대사관 위계출 공사, 백금식 주중 한인회장도 참석했다.
그중 가장 눈길을 끄는 사람은 단연 고영광씨 였다. 여러 명의 참석자들 가운데서 김산의 아들을 찾으라고 하면 김산의 사진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망설임 없이 그를 지목할 것이다. 그렇게 그는 김산을 꼭 빼어 닮았다.
“미안합니다. 한국말을 배우지 못해서. 아버지의 존재를 좀더 일찍 알았더라면........”
괜찮다는 우리의 답변에도 거듭 미안해했다. 김산, 아니 본명 장지락의 아들이 고씨라니? 통역을 통해 그는 험난했던 가족사를 털어놨다.
항일전쟁중에 맺어진 중국인 어머니와의 사랑은 혈육 한점으로 남았다. 그나마도 김산은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만 들은 채 고씨가 태어난 다음 해인 1938년, 일본 스파이라는 누명을 쓰고 33살 나이에 중국 공산당에 의해 처형을 당했다. 두 번의 체포로 옥살이를 한 그는 공산당 내부 권력 싸움의
희생양이 되고 만 것이다.
어머니는 재혼한 중국인의 성씨를 아들에게 쓰고 아들이 마흔이 다되도록 친부 김산에 대한 말을 단 한 번도 들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스파이 누명을 쓰고 처형당한 아버지로 인한 위험에 아들이 빠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후 중국을 광기의 늪으로 빠뜨린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스파이 누명을 씌운 관계자들이 실각한 후 중국의 새 지도부에 친부의 재심을 요청했다.
호요방등 새 지도부의 많은 이들이 항일투쟁을 함께한 동지들로 김산의 억울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던 터라 재심을 받아들였다. 83년1월27일 중국정부의 공식적인 복권이 선포되고 그는 김산의 아들로 다시 태어났다.
그는“마흔이 다되어 친부의 존재를 알게 되어 정체성에 많은 혼란이 있었다”고 털어놓으며 “온몸을 다 바쳐 일본 군국주의와 싸우면서 중국과 한국의 가교역할을 한 아버지가 양쪽 모두에게 버림받은 현실에 너무 고통스러웠었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광복 60주년인 지난해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내에서도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에게 서훈하는 것은 국가정체성을 흔드는 일이라는 일부의 반대도 있었지만, 독립운동당시 서로가 노선만 달랐을 뿐 민족의 독립을 위한 일념은 같았음을 인식한 한국 정부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했다.
국가경제무역위원회 과학기술부 부국장을 지내고 8년 전 퇴직한 그는 친부를 기리는데 많은 시간을 갖는다고 했다.
40년 동안 그에게는 비밀의 존재였던 김산은 님 웨일스 저서 ‘아리랑’의 주인공이다. 이 책을 통해 조선을 잘 알게 되었다고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이 감사를 표한 이 내용은 치열하게 살다 젊은 나이에 생을 마친 사회주의 계열의 조선의 민족독립 운동가 얘기이다.
김산(1905~1938) 본명은 장지락(張志樂). 광북 용천출생. 일본, 만주, 상하이, 베이징, 광동, 옌안 등을 누비며 중국 공산혁명을 봉안 독립운동에 몸을 던졌다. 신흥무관학교를 최연소로 졸업한 뒤 상하이로가 이동휘, 안창호 등의 영향을 받았으며 이때 김충창(운암 김성숙의 다른 이름)의 지도를 받아 사회주의자가 되어 25년 중국대혁명에 참가했다. 30년과 33년 두 차례에 걸쳐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형을 마치고 항일전쟁에 참가해 중국공산당의 본거지인 연안 항일군정 대학에서 물리학, 화학, 수학, 일본어, 한국어를 강의했다. 이때 님 웨일스를 만나 인터뷰 형식의 ‘아리랑’이 탄생했다.
그러나 1년뒤인 38년 중국공산당 사회부장 캉성에 의해 일제스파이라는 누명을 쓰고 권력투쟁의 희생물이 되었다.
1983년 중국 공산당의 김산의 억울한 죽음을 인정하고 명예와 당원 자격을 복권시켰다.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불꽃같은 삶은 500여쪽의 증보판‘아리랑’이 새롭게 선보여 계속 스테디셀러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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