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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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광복군3지대 징모와 훈련장 찾아
글쓴이 코리아
날 짜
06-10-28 16:42
조회(5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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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화북지역 항일무장투쟁지 답사기    다섯째날 (06년 8월9일) 정만기

이번 답사 중 21시간이라는 가장 긴 열차여행 끝에 서주에 도착했다.
서안에서 오후 3시30분 열차에 올라 통관, 낙양, 정주, 개평, 상구를 거쳐 서쪽으로 오며 차속에서 지는 해를 보고 저녁을 먹고 잠을 자고 아침을 맞고 식사를 하고 낮 12시에 도착했다.

6인실 침대칸에서 현지 중국인들과 얼굴을 맞대고 스무시간 이상을 함께 부대끼니 모두가 하루 만에 현지인이 다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60여 년 전 선조들의 항일무장투쟁 유적지를 답사하는 우리 일행을 그들은 “우리 중국인들과 함께 한국투사들이 일본 침략군에 대항해 싸운 것을 책과 TV를 통해 익히 잘 알고 있다”고 반겨 주었다. 그러면서 지금은 중국이 개방화되어 돈벌이에 관심이 모두 쏠려 젊은이들의 역사의식이 걱정된다는 안타까움도 나이든 중국인들은 털어놨다.

아침에 옆 침대칸에서 자다 부스스 일어난 소학교 꼬마가 온수통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 컵라면을 익힌 후 한입 먹어보라고 권해 차마 우리는 식당칸에 가서 아침 먹는다는 말을 꺼내기가 민망했던 모습이 지금도 떠오른다.

오랜만에 땅을 밟아보자마자 다시 버스에 올라 다섯 시간이 넘게 달렸다. 이국의 풍경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모두들 머리만 닿으면 꿈나라로 옮겨갔다. 12일중 이제 겨우 닷새째인데 한 달은 된 듯 하다.

 두시간만에 외딴 길 가로 차가 멈춰 화장실 갈 시간을 주었다. 시골 주유소 옆 길가 논 에 지붕도 없는 벽돌건물에 겨우 남녀만 구분 되었을 뿐 화장실 칸막이는 아예 없는 전형적인 중국 농촌 변소에 모두들 난감했으나 별 도리가 없었다. 확실한 현지화가 될 수밖에 ...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임천 제일중학교에 도착했다. 임천은 한국광복군 제6징모처와 제3지대에서 운영한 한국광복군훈련반이 있던 곳이다. 당시는 안휘성 임천현 임천소학교였으나 지금은 중학교로 바뀌었고 맞은편에는 임천현 인민정부청사가 자리하고 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광복군을 도와 항일전을 치른 황포군관학교 16기 출신 중국인 훈련교관 이빙의 아들 이용씨였다. 그는 생전의 아버지로부터 들은 광복군의 활약에 대해 증언했다. 고난의 항일전쟁을 함께 치르는 광복군 대원들을 농촌지역에 데리고 가 토실토실한 개를 잡아 몸보신을 시켜 주는 등 빈약한 보급품 여건에 도움을 주며 고락을 함께한 동지애를 떠 올렸다.

관광지도 아닌 그 곳에 낯선 이방인들이 찾자 인근 주민들이 대거 몰려 우리를 신기한 듯이 바라보며 떠날 줄을 몰랐다. 차에 오르기 전 우리답사단은 다시 급한 용무를 해결하기위해 주민들을 따라 나섰다. 화장실 말이다. 그러나 우리 기대와는 달리 시내인데도 칸막이 없는 화장실에도 이제 별 불만 없이 적응하는 경지에 이르게 되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부양시의 숙소에 도착하니 10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모두들 씻자마자 잠자리에 들었는지 조용했다.

여섯째날 (06년 8월 10일)

피곤한 몸을 추슬러 부양시의 인민서로에 있는 역사의 현장으로 향했다. 현재는 디스코장으로 쓰이는 옛 부양극장은 광복군 제3지대가 발대식을 가진 곳이다.

광복군 제3지대장인 김학규장군은 불과 5명의 대원을 이끌고 이곳에 와 광복군 충원작전을 벌였다. 죽음을 무릎쓰고 서주, 남경, 상해등지에서 초모활동을 벌여 한국의 학도병들을 일제의 군부대에서 탈출시켰다. 이때 일본군에 체포되어 순국하신 이원대열사의 아들 이동철(답사단원)씨에게는 남다른 감회가 느껴지는 곳이리라.

이들을 광복군에 편입시켜 3백명의 정예부대로 만들어 임천에서 훈련하고 부양극장에서 역사적인 발대식을 한 것이다. 그러한 역사적인 자리에 표지석 하나 못 세우고 기념사진만 찍는다는 것이 매우 안타까웠다.

다시 서주로 나가 시내에 있는 중국군 공정부대를 방문했다. 그곳은 60여년 전 일본 제국주의 군대중 규율이 엄격하기로 소문난 스카다부대 자리 였다. 철저한 감시 속의 이 부대에 배속된 한국의 학도병들 중 장준하와 김영록, 윤경빈, 홍석훈등이 탈출해 광복군에 입대했다.

장준하는 OSS훈련을 자청하여 받고 본토 진격의 최 전선에 앞장선 독립투사였으며 해방 후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다가 군사독재정권에 희생된 참 한국인이다.

그들의 고뇌에 찬 현장을 상념 속에서 둘러본 후 수많은 학도병들이 조국광복의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일본군의 감시를 피해 걷던 그 길을 우리 답사단도 함께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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