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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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남과 북의 무관심 속에서 방치된 역사현장
글쓴이 코리아
날 짜
06-09-18 22:48
조회(5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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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화북지역 항일무장투쟁지 답사기 <둘째날>  정만기


3시30분에 일어나 짐 싸고 한 시간 뒤 호텔을 나와 어슴푸레한 차 속에서 빵과 우유 등으로 아침을 해결하며 하루가 시작되었다. 7시55분 연안(延安)행 비행기에 타기위해 서두른 행보였다.

그러나 우리 일정과는 달리 중국여행의 진면목은 여기서부터 였다. 북경공항 국내선에 도착한 답사단에게 비행기 연착으로 좀 기다리라더니 낮 12시가 되어서야 탑승케 했다.

그 한나절동안 대합실에서 모자란 잠을 보충하고 항공사에서 준 도시락을 먹고 조별 오락 등으로 시간을 때울 때까지 너무나도 천연덕스러운 중국인 승객들과 항공사 직원들을 보고나니 이곳이 중국이라는 생각이 절로 났다.

기내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하늘에서 차분하게 본 하북지방은 온통 나지막한 산과 골짜기로 이루어진 고원지대였다. 특이한 것은 온 산등성이까지 길을 내고 개간해 경작지가 부족한 지방임을 짐작케 했다.

두시간정도 걸려 섬서성 연안시 공항에 도착하고 보니 시골버스 정류장을 연상케 했다. 연안은 중국공산혁명사에는 국민당에 저항한 2만5천리‘대장정’으로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공산당 성지이며 항일전쟁과 국공내전동안의 근거지이다.

한국독립전쟁사에는‘연안파’로 알려진 조선의용군의 근거지로 유명하며 님 웨일즈가 쓴 ‘김산의 아리랑’의 무대가 바로 이 곳이다.

조선의용군의 숫자는 비록 수백명에 지나지 않았지만, 현재의 중국이라는 국가체제를 가장 먼저 인정하고 일본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함께 전쟁을 수행하며 다진 의의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시내에서 동쪽으로 4㎞ 떨어진 나가평(羅家坪) 마을입구에는 지난 96년 현지 정부가 세운‘조선혁명군정학교터’기념비가 답사단을 맞았다.

김산 등 한국독립지사가 30년대 중반부터 찾기 시작한 이래 본격적인 중일전쟁으로 중국공산당과 항일전쟁을 공동수행하기위해 한국의 젊은이들이 밀려들자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을 위해 44년 9월 착공해 12월 준공하고 이듬해 2월 5일 정식 개교했다.

우리는 20분쯤 다시 걸어서 마을 맨 뒷편 산 아래 현장으로 갔다. 산 밑 쓰레기장같은 황토 가시덤불위로 굴이 몇 개 보였다. 10여 년 전쯤에는 사람들이 살았는지 문창살이 아직 달려있는 토굴집 대여섯 채가 있었다.

그곳이 조선혁명군의 숙소였다. 지역 환경에 적응하느라 아직도 토굴 거주민이 제법 있는 곳이긴 하지만 학교건물을 기대하고 온 답사단에게는 너무 큰 충격이었다.

중국공산혁명사에 밝은 최용수 교수는 우리에게“ 일제에게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 수만리 떨어진 이곳까지 온 젊은이들은 이런 환경에 결코 낙담하지 않았다. 낮에는 농장생산대, 벽돌기와공장조 , 목공조, 방직조 등에서 일하고 밤에는 군사훈련과 학습을 했다.”고 말하고 “연안시절 모택동도 이런 토굴집에서 병사들과 함께 살았다”고 덧붙였다.

찌는 듯 한 햇살과 지저분한 환경에 짜증도 날만 하건만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누르고 수첩에 무언가를 쓰며 다들 분주했다. 그 중에는 말로만 듣던 고난의 독립전쟁의 실상과 방치된 역사의 현장에 속상해 말을 잊은 사람들 사이로 돌아서 눈물을 훔치는 이도 있었다.

남한에서는 사회주의자라고 인정받지 못하고, 북한에서는 숙청된 연안파라고 관심 밖이어서 이렇게 방치된 것이다. 일제의 노예에서 해방되었으나 이념의 포로가 되어버린 한민족의 아픈 현실이 수만리 이국땅에서 다시 확인 되는 순간이었다.

다음으로 시내 중심가 봉황호텔 옆에 있는 중국항일군정대학에 갔다. 국민당 폭격으로 폐허가 된 곳에 기념관이 있었다. 중화인민공화국 1세대 지도자인 모택동, 주은래, 양상곤, 주덕 등 기라성같은 인물 사이로 ‘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해 중국 혁명음악의 대부로 널리 알려진 한국 출신 음악가 정율성(1914-1976)선생의 사진이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한국인들의 뛰어난 자질은 어디를 가나 숨기기 힘든 모양이다.

이어서 왕가평대교 부근에 있는 연안신문기념관에 갔다. 학습과 홍보를 중시하는 사회주의권에서 인민일보, 해방일보, 신화사 등 항일전쟁 수행 시 탄생해 승리의 중추적 역할을 한 언론들의 연안시절 생생한 모습이 잘 전시되었다.

1천년된 보탑에 올라 연안시를 멀리 둘러보고 저녁식사 후 대형마트에 들러 간식거리를 사들고 저녁 10시 열차에 올랐다. 서안까지 9시간을 달려야 한다. 침대칸을 배정받고 짐을 정리하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1시까지 조별 토론이 이어졌다.

중국에서 이제 겨우 둘째 날이 지났을 따름인데 이미 일주일은 지난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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