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개척리
현재 구개척리는 러시아 거리로 완전히 바뀌어 있어 한인의 흔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구개척리는 블라디보스토크 군항 건설을 전후로 한 1874년 한인들이 최초로 집단 거주하던 지역이다. 현재의 포크라니치나야 거리 1번지로부터 ‘둔덕마투애’라고 부르던 그 아래 저지대에 이르는 일대가 러시아어로 ‘카레이스카야 슬라보드카(한인거주지)’라 불렸던 개척리 마을이 있던 곳이다. 1911년 5월 콜레라 에방을 이유로 이곳의 한인마을을 폐쇄하고 한인들을 신한촌으로 이주케 한 후 기병대의 주둔지로 삼았다. 이후 한인 집단거주지를 구별하기 위하여 웅덕마투애, 둔덕마투애에 있었던 한인촌을 ‘구개척리’라고 했고, 신한촌은 ‘신개척리’라 부르게 되었다. 구개척리는 을사늑약 이후 국치를 전후해 신채호, 장지연, 이강, 홍범도, 유인석 등 국내외 저명한 독립운동가들이 운집한 독립운동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계동학교 등 한인학교와 해조신문, 대동공보, 대동신보 등 한인 언론기관이 위치해 있던 곳이다. 1910년 8월 ‘경술국치’ 직전 유인석, 이상설, 김학만, 이범윤, 김좌두 등이 ‘경술국치’를 저지하기 위하여 성명회(聲明會)를 조직한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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