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해절터
우스리스크는 청나라 때 ‘쌍성자(雙城子)’라고 불렀다. 그 이유는 이 곳에 두 개 토성이 쌍둥이처럼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성과 남성으로 불리어지던 두 성은 약 1㎞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서성은 시가지로 편입되어 그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그러나 남성은 현재도 성벽의 일부가 남아 있어 성의 윤곽을 대략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남성(유즈노 우스리스크성)이 만들어진 것은 발해의 전성기 때인 8세기경으로 12세기 전반에 나라를 개창한 금나라 시대까지 사용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에 반하여 서성은 금나라 시대 만들어진 성으로 생각하고 있다. 남성 안에는 절터가 있는데, 현재는 나무들이 빽빽하게 심어진 공원이 되었다. 1954년 러시아 학자에 의해 발굴이 이루어졌을 때는 이곳에 절이 드렁선 것은 발해시대라고 추정했다. 하지만 지금은 금나라 시대에 지어진 절로 의견들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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