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참변추모비
1917년 러시아에서 볼셰비키혁명이 일어나자 1918년 일본은 시베리아 재류 거주민을 보호한다는 구실 아래 시베리아 출병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1920년 4월 4일 미국, 영국, 프랑스 등 무력산섭 열강들이 철병을 단행하자, 홀로 주둔하게 되어 국제적을 고립화되었고, 미. 영. 불 등 연합군이 철병한 직후니 4월 4일 밤부터 5일 아침까지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톨, 우수리스크, 하바로브스크, 스파스크, 이만, 포시예트 등 주요 도시의 러시아관공서와 혁명군부대 그리고 한인거주지들을 습격하였다. 연해주 전 지역에서 한인들이 대거 검거되었고 체포된 주요지도자들이 아무런 재판절차없이 학살되었다. 이것이 4월 참변이다.
블라디 보스톡의 신한촌에서는 60여명, 우스리스크에서는 76명의 한인들이 일본현병대에 체포되었다. 특히 우스리스크(당시 니콜스크-우수리스크)에서는 체포된 사람 가운데 최재형, 김이직, 엄주필, 황경섭 등 한인지도자들이 일본현병대에 의해여 학살되었는데, 유족들이 시체를 돌려줄 것을 강력히 요청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일본헌병대는 이를 거절하였다. 현재까지도 이들 4분의 애국지사들이 어디에서 학살되었는지, 일본헌병대가 이들의 시체를 어디에 방기했는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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