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지동맹기념비
안중근은 1909년 3월11명의 동지들과 함께 비밀리에 단지회(斷指會)를 조직하여 다음과 같은 성명서를 발표하고 조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다지며 왼손 무명지를 잘랐다. “오늘날 우리 한국 인종이 국가가 위급하고 생민(生民)이 멸망할 지경에 당하여 어찌 하였으면 좋은 방법을 모르고 혹 왈 좋은 때가 되면 일이 없다 하고, 혹 왈 외국이 도와주면 된다 하
나 이 말은 다 쓸데없는 말이니 이러한 사람은 다만 놀기를 좋아하고 남에게 의뢰하기만 즐겨하는 까닭이라. 우리 이천만 동포가 일심단체하여 생사를 불고한 연후에야 국권을 회복하고 생명을 보전할지라. 그러나 우리 동포는 다만 말로만 애국이니 일심단체이니 하고 실지로 뜨거운 마음과 간절한 단체가 없으므로 특별히 한 회를 조직하니, 그 이름은 동의단지회(同義斷指會)라. 우리 일반 회우가 손가락 하나씩 끊음은 비록 조그마한 일이나 첫째는 국가를 위하여 몸을 바치는 빙거(憑據)요. 둘째는 일심단체하는 표라. 오늘날 우리가 더운 피로써 청천백일지하에 맹세하오니 자금위시(自今爲始)하여 아무쪼록 이전 허물을 고치고 일심단체하여 마음을 변치 말고 목적에 도달한 후에 태평동락을 만만세로 누리옵시다.”
안중근을 맹주로 김기룡, 강순기, 정원주, 박봉석, 유치홍, 김백춘, 백규삼, 황병길, 조응순, 김천화, 강창두가 함께 했다. 동지들의 선혈을 모아 안 의사는 태극기 주변에 “대한독립” 네 글자를 혈서했다.
안중근과 11명의 동지들이 조국 독립을 기원하며 단지한 것을 기념하여 2001년 광복회와 고려학술문화재단이 크라스키노시를 관통하여 서쪽으로 빠지는 다리인 쥬카노브카 다리 밑에 단지 동맹비를 세웠다. 기왕 세울 비라면 단지동맹을 결의한 연추 하리에 세웠음이 더 좋았을 터인데, 구태여 이곳에 세운 이유는 아무래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을 선정하다보니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단지동맹비는 이곳에도 없다. 비의 앞면은 한글로, 뒷면은 러시아어로 되어 있는데, 의도성을 가진 사람들에 의하여 비문의 일부가 판독이 불가능할 정도로 훼손되어 결국 좀 더 관리가 가능한 곳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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