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해성터(외성)
이상설 유허비를 뒤로 두고 남으로 달려 낮은 언덕을 넘어가면 가슴이 확 트이는 넓은 대지를 만날 수 있다. 발해 외성이 있던 터이다. 연해주는 아시아 대륙의 남동쪽 끝으로 한반도의 북쪽과 맞닿아 있으며, 동서양을 연결하는 초원지대의 시작점이다. 본래는 중국 땅이었으나 1860년에 중국과 러시아가 맺은 베이징 조약으로 인하여 러시아 영토가 되었으며, 그때 이후 지금까지 러시아 땅이다. 이곳은 우리 땅 한반도에서 두만강을 건너면, 바로 발길이 미쳤던 곳이기에 선사시대부터 한반도와 서로 오고 갔던 동일한 문화권이었고, 따라서 함흥평야지역에 위치했던 옥저의 유물이 연해주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고구려와 발해의 유적도 다수 발굴된다.
특히 발해시대에는 연해주의 대부분이 발해의 영역권이었고, 우스리스크는 발해의 지방 행정구역인 15부 중 말(馬)로 유명한 솔빈부의 중심지였기에 발해 유적이 빈번하게 출토되고 있다. 발해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는 평지에 성을 쌓고 유사시에 대비하기 위하여 가까운 산악지역에 산성을 하나 더 쌓았다. 물론 이처럼 평지성과 산성을 함께 두는 것이 발해만의 고유한 전통은 아니다. 고구려의 축성 방식을 이어받은 것이다. 고구려는 성을 쌓을 때 대체적으로 평지성과 산성을 함께 축조하였다.
고구려의 초기 수도인 환인에 오녀산성과 하고성자성이 나란히 있으며, 두 번째 수도인 집안에는 환도산성과 국내성이 서로 사이좋게 어깨를 맞대고 있다. 이 전통이 우스리스크의 발해 성에서 고스란히 적용된 듯, 시내에 두 개의 평지성을 쌓은 흔적이 현재 남아있고 시 외각의 남쪽에 있는 높은 구릉 지대에는 산성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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