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한촌터
1911년 5월 구개척리에 거주하던 한인들이 러시아당국의 명령으로 이주해 와 새로이 신한촌이 건설되었다. 신한촌에는 연해주 한인들의 자치기관이었던 권업회와 그 기관지인 권업신문사, 신한촌민회, 한민학교, 여성단체인 자혜부인회와 대한여자단, 그리고 이 두 단체가 통합한 대한부인회 등이 위치하여 민족운동을 이끌었다. 1917년 러시아혁명 후에는 신한촌민호, 권업신문을 계승한 한글신문 한인신보사, 그리고 3․1운동후에는 고조된 항일분위기를 타고 노인동맹단, 소년애국단, 기독청년회, 부인회의 후신인 부인독립회, 소녀애국단, 일세당, 한인사회당, 대한국민의회 등 각종 단체의 사무소가 위치하여 항일독립운동, 혁명운동의 본거지 역할을 담당하였다.
신한촌의 이러한 역할을 1920년 연해주 주둔 일본군이 자행한 4월참변으로 항일단체들이 해산되거나 도피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1922년말 일본군이 철수하고 소비에트 정권이 수립되면서 신한촌은 다시 연해주 한인사회의 중심지가 되어 스탈린구락부, 고려도서관, 도려극장 등의 문화기관과 9년제 학교 등 교육기관이 위치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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